사랑의 조건은 타이밍

그러니까 하기가 어려운 것이지

by Lagom




점심시간. 어김없이 오늘도 김과장과 메뉴 고민을 하다 날도 쌀쌀하니 짬뽕을 먹기로 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전투 중 식사시간과 다를바가 없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식당에서 빨리 나오는 메뉴를 골라 위를 채운다. 이동시간과 식사시간을 합치면 1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떄문이다. 식사 후 산책 비슷한 걸음이라도 하려면 빨리 먹어야 한다.

짬뽕 두 그릇으로 메뉴를 통일한 덕분에 자리에 앉자마자 식사가 나왔다. 동료와 나는 빠르게 젓가락질을 놀리며 먹기 시작해했다. 그러던 중 옆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좁은 테이블을 헤치고 나가다 우리 테이블에 놓인 물병을 넘어뜨렸다.

'헛,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물병을 넘어뜨린 남자가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물병의 물은 테이블을 적시고 내 바지까지 다 적셨다. 김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냅킨을 빠르게 나에게 건네주었다.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나는 그 사람을 올려다봤다.

'어..? 편의점, 그 때 GS편의점 커피 분 맞죠?'

순간 누구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 그랬다. 10년간 만난 구남친의 물건을 전해주러 나가다 잠시 들린 편의점에서 마주친 그 남자. 내 옷에 커피를 쏟아 구남친에게 쿨하고 멋진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 날은 나에게 커피와 함께 굴욕을 쏟더니 왜 또 여기서 무언가를 쏟는 것인가.


'아 네'

더 이상 마주치기 싫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짧고 굵은 나의 대답이었다.

'여기 근처 근무하시나봐요 지난번에 제가 명함드렸는데 연락이 없으셔서 안그래도 너무 죄송했어요 명함 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세탁비 꼭 드릴께요'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제발 그냥 좀 가라, 하는 나의 속내를 못 알아들었는지 그 남자는 함께 식사한 남자에게 먼저 계산하라고 보내면서까지 우리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나의 불편한 표정을 읽은 김과장이 자기 명함을 꺼내 그 남자에게 전해주었다.

'제가 이분이랑 같이 일하니까 다음에 여기로 연락 주시구요 오늘은 일단 가세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네요'

'아 네네 그럼 제가 여기로 연락 다시 드리겠습니다. 식사 마저 하세요. 너무 죄송해요'

김과장의 빠른 처리로 그 남자는 명함을 들고 나갔다.


그 남자가 나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던 김과장이 나에게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뭐야 뭐야 저 사람 박과장한테 관심있는 거 같아'

'뭔소리야... '

'아니 그렇잖아 아무리 커피를 쏟고 물을 쏟았어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세탁비 변제해주려는 사람 요새 없어'

'그냥 오지랖인가보지'

'언제 마주친거야?'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다신 떠올리기 싫다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박과장, 아니 정민. 사랑의 조건이 뭔지 알아? 돈, 직업, 얼굴, 마음? 뭐 이런거 아니야. 타이밍이야 타이밍! 타이밍만 맞으면 시작되는게 바로 사랑이라고. 그러다가 또 결혼할 시점이라는 타이밍이 맞으면 그 때 만나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다들 사는거야.'



사랑은 타이밍. 생각해보면 10년간 만난 지지부진한 그 남자도 타이밍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놈의 타이밍 때문에 10년을 끌었다. 만남과 이별의 타이밍을 미리 몇 발 앞서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마음의 준비도 늘 먼저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됐습니다... 됐어요. 괜히 심심하니까 지금 이런걸로 흥미 붙이려는 거 아니야 김과장'

그녀는 응큼한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두고봐 저사람 연락온다. 연락오면 정민 연락처 내가 알려줄거야~ 말리지마'

'됐고 커피나 사러 가요'

사춘기 소녀처럼 들뜬 그녀를 데리고 카페로 가며 나는 그녀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soraya-garcia--mOk_yWnCWQ-unsplash.jpg


정말 지금이 나의 타이밍일까?

내가 참 좋아하는 드라마 연애시대에 나왔던 '운명의 빨간 실'이 정말 있는걸까?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참 우습다, 싶었다.

사랑이 끝났음에도 새로운 사랑이 도래할거라는 믿음, 사랑으로 인한 극심한 상처를 잊은 채 또 다시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