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멀리하세요
영화 중경삼림이 최근 재개봉을 했다.
'만일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의역된 대사이지만 이 한 줄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직역한 자막은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 후로 적어야지' 였던 것 같다.
이별의 아픔을 겪은 두 남자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중경삼림.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회자되는 이유는, 만남과 이별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적당한 타이밍에 흐르는 OST까지. 정말 최고의 조합이다. 하지만 정말 어떤 관계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할 수 있을까.
어릴 때 나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랑은 절대 변할 수 없다는 철썩같은 믿음은 사람을 참 여러모로 비루하게 만든다. 무엇이든지 여러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유독 '이별'은 그렇지가 않다. 겪을 때마다 늘 새롭다. 애써 아물게 한 상처의 위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상흔을 만지면 더 이상 아프진 않지만 그 상처가 새겨졌던 기억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몇 차례 만남과 이별을 겪고 난 후에 깨달았다. 모든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단 이성관계뿐만 아니다. 친구, 직장동료 심지어 가족 간에도 관계의 유통기한이 있다. 마치 유통기한이 없는 것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기한이 좀 더 늦게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저마다의 노력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집 안에 화분을 들여놓고 잊지 않고 때마다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끔 신경 써 주는 그런 노력 말이다. 그리고 여기엔 삶의 크고 작은 굴곡을 지나 오랫동안 함께 하는 부부들의 '비슷한 취미생활'도 포함된다.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 없다면 그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유통기한이 다 된 관계를 꼭 슬퍼할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하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유통기한이 끝난 관계를 놓지 못하고 절절대며 붙잡고 있다 보면 나까지 말라비틀어진 오이처럼 퍼석하게 상해버린다.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끝난 건 아니다. 또한 상대방과의 인연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해서 내가 '관계 맺기 실패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지 그 이상, 그 이하의 이유도 없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 관계가 끝났을 때 스스로를 '실패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고착화된 생각은 새로운 시작을 두렵게 만든다. 이미 끝난 관계를 애써 붙잡고 매달릴 시간에 다른 것들에 더 애정을 쏟는 편이 낫다. 애쓸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은 애쓰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 주어진 제한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애정을 더욱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