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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Aug 26. 2020

적성을 찾아가는 일

직업과 적성의 상관관계



삶은 순간의 합


삶의 무수한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의 이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애먼 미련은 늘 우리의 발목을 붙잡곤 하죠. 하지만 더 좋은 선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가지 않은 인생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질 테니까요. 

 그저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 선택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거기서 멈출 테니까요.




현실과 이상 속에서의 괴리


 저는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적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급여와 근무 환경도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무 살부터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만 했던 저는 사회에서 빨리 자리를 잡고 돈을 버는 게 가장 급선무였습니다. 저는 졸업과 동시에 '소속될 곳'이 필요했고 제적성이 어느 정도 발현될 수 있는 곳으로 원서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한 현실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이상 사이에서 파닥파닥, 괴리를 느끼며 말이죠.


 그렇게 저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연구를 하는 공공기관에 처음으로 입사했습니다. 얼떨결에 모두가 바란다는 공공기관에 입사한 것이죠. 처음 6개월은 재밌었습니다. 대학원에서 배웠던 분야를 활용할 수 있었고, 대학에서 배웠던 통계도 꽤 도움이 되었거든요. 예술과 교육을 매개로 연구 기획을 한다는 것은 제 흥미와도 꽤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어가면서 저는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먼저 예술교육의 효과라는 것이 단시간에 발현되는 것은 아닌데, 매번 단발성 연구 사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에는 연구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몇 번 진행하다 보니, 모든 게 비슷비슷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어딘가 소속되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 제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새로운 것, 즐거운 것, 모험을 좋아하는 역동적인 저는 이 곳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도 늘 쫓기는 처지였습니다. 서울에서 혼자 살며 월세를 내고,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미래를 위한 적금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늘 빠듯한 급여였으니까요.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돈은 적어도 안정적이니까 괜찮지 않냐고 했지만, 저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어릴 적 가난이 자꾸 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고깃집 앞에서 지갑 속 상황을 셈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도, 돈도 그 어느 쪽도 저에겐 충족되지 않았기에 이 상황을 타개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우연한 기회에 게임회사 구인을 알게 됐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게임 기획의 ㄱ도 모르던 저는 '사람이 하는 일이 뭐 다 똑같지'. '게임 좋아하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도전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대학원 전공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고 '기획'을 하고 싶었으니 그 결은 비슷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저는 새로운 선택에 대한 두려움보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그렇게 발을 디딘 새로운 곳에서 6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저를 증명해야만 했고, 숱하게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는데요. 그런 끈질김과 오기로 저는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냈습니다. 게임 런칭이라는 성과도 이루어냈죠. 의외로 이 일이 제게 꽤 잘 맞았던 것입니다. 



선택의 기준


 일을 시작하고 보니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게임을 만드는 것엔 분명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직 후 처음 들어온 회의 시간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요. 사람들은 모두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저는 내용의 절반 이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매일 회의시간에 녹음을 했고 그 녹음본을 출퇴근길에 두 번씩 다시 들었습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리했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동료나 팀장님들을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모르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게 창피한 일이죠. 


 이런 당돌함으로 6개월을 꼬박 보내고 나니 저는 더 이상 회의실에서 녹음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제게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두려움'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물론 장단점은 있었습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공공기관에서 얻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이 곳에선 얻을 수 없었어요. 익숙한 일들을 매번 매끈하게 처리해나가면 되었던 공공기관과 달리, 이 곳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습니다. 


출처. unsplash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새로운 선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해하고요.  어느 누구도 지금 자신의 선택을 100% 만족하진 못할 것입니다. 다만 내가 한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뿐이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혹은 실패가 두려워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선 안됩니다. 


  어떤 선택이든 행복과 불행은 공평하게 있어요. 우리는 더 행복할 것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의 불행을 더 견딜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란 없고, 행복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는 끝이 없으니까 말이죠. 


 이직한 후, 사람들이 내게 '일이 적성에 잘 맞아? ' 하고 물어보면 전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맞추는 중이에요' 하고. 어쩌면 우리의 적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 지거나, 어느날 갑자기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실패를 겪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발견되는 것 아닐까요. 선천적인 재능이 필요한 일들이 아니라면, 꼭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숱한 실패와 도전을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가늠해보고 방향을 정한 이후부터는 강력한 동기로 그 시간들을 겪어내야 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늘 고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지금 가는 길이 두렵더라도 견뎌내며 나의 쓸모를 만들어 나가는 일. 그것은 타고난 재능을 뛰어넘는 일이 될 수 도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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