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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Jan 06. 2022

기획자로 먹고 산다는 것




저는 기획자입니다.

전시 기획, 문화예술정책 기획, 광고 기획, UX기획, 그리고 게임 기획(현재 제 종착지입니다)에 이르기까지.

분야는 조금씩 달랐지만 제가 이어온 업의 틀은 바로 ‘기획’ 이었습니다.


저는 기획자가 예술가처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갑자기 악상을 떠올리는 것처럼, 참신한 아이디어가 대번에 탁! 하고 떠오르진 않는거죠.  기획자는 눈 앞에 펼쳐진 여러 현상들을 분석해보고 문제점들을 이어가며 이것들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특화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만...)


 영감이 불현듯 떠올라 신박한 아이디어를 기획에 대박을 터트리는 것은 ‘기획자’의 모든 염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죠. 보통은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펼쳐놓고 어떻게 잘 조합해서 하나로 만들어낼지 ‘퍼즐 맞추기’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이 선택이 ‘옳다, 좋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데 집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에서 ‘의도’는 가장 모든 프로젝트의 근본이 되는 주춧돌과 같죠.




나만의 생각창고 만들기


 모든 기획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 업에서 고군분투 하시는 분들 모두 느끼시듯이 결코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절한 타이밍에 풍성하고 좋은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평소에 워밍업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이게 지금 당장은 쓰이지 않을지라도,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볍게 메모해 두는 거죠. 눈에 띄는 기사나 아티클도 스크랩해서 따로 모아두고 있습니다. 기획에서도 역시나,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이런 습관이 지속되면 나만의 생각창고가 그득하게 차게 되거든요.


그리곤 이따금씩 생각 창고를 들여다 봅니다. 나열된 텍스트나, 적어둔 메모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의 전열을 가다듬는거죠. 그리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유사한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그 메모에 다시 내용을 덧붙입니다. 필요하다면 여러 디자인 작업을 찾아보기도 하고, 디자인 규칙이나 요즘 트렌드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하죠.

간혹 기획자가 무슨 디자인 공부까지 하는거야?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획의 전달 요소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내가 짜놓은 기획이 실제 구현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개발이 필요한 분야의 기획자라면 개발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파편화된 생각들을 나만의 ‘생각 창고’에 넣어두고 적당히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고 관리하다보면 이 생각들은 꽤 향이 좋은 와인처럼 숙성이 됩니다. 필요한 시점에 꺼내 쓸 수 있는 나만의 무기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만든 생각의 골조를 타인에게 왜곡 없이 전달하는 것 또한 기획자의 능력 중 하나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에 대한 타인의 반응에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죠. 다른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지의 태도를 관찰하다보면 미처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획자 초년생 시절엔 무조건 모든 최신 정보를 섭렵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의 원천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을 들이 밀어도 충분히 그 맛을 느낄 시간이 없다면 되려 체할 수가 있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주 곱씹어 보세요. 처음 맛보다 두번 세번 씹을 때 생각의 느낌이 점점 달라지게 됩니다. 


기획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굉장히 중요하죠. 기획자인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저를 믿고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 합니다. 그렇기에 기획자야말로 가장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함께 지녀야 합니다. 참 까다롭죠?




그럼에도 저는 기획 일을 사랑합니다. 

내가 생각한대로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낄 때, 내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사람들 마음에 꽂힐 때 또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내가 해결해주었을 때. 이 때야 말로 기획자로써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인 것 같습니다.


온 몸의 감각을 항상 깨우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기획자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도 여전히 부족한 기획자이지만 늘 쫀쫀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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