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가 아닌 분들을 만나면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는 "술 마시고 범죄 저지르면 심신미약으로 처벌도 잘 안 받고 그러죠?"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상당히 잘못 알려진 내용이라, 제가 실제로 담당했던 사례를 들어 설명드리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피고인은 어린시절부터 환청과 환시를 경혐하였고, 조현병 진단을 받아 오랜 시간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족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 큰 충격을 받은데다, 피고인의 지인이었던 이 사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지속적으로 자살을 종용하였고,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이 사건 피해자는 오랜 시간 피고인에게 지속적으로 '죽어라', '아직 죽지 않았냐?'며 자살을 하도록 몰아붙였고, 조롱을 해왔었습니다.)
사건 발생일 당시에도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계속하여 '뛰어내려라', '쫄보 자식이라 자살도 못하네'라며 조롱을 해댔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며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하였습니다. 피해자가 사망하자 정신이 든 피고인은 즉시 사망한 피해자를 부둥켜 안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119에 신고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의 가족들은 항소심에서 변호인을 새로 선임하면서 피고인의 형이 감경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물었고, 당시 구속상태였던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공주치료감호소에서 받아보기로 하였습니다.
1심까지 담당했던 변호사는 심신미약 주장이나 정신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저 역시 형사사건 변호를 하면서 심신미약을 주장해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생각과 달리, 형사사건에서 심신미약 주장은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고,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텐데 괜히 주장하였다가 엄벌만 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변호사들은 이러한 주장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만큼은 심신미약 주장이 딱 맞는 케이스가 아닐까 싶어 정신감정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왜 정신감정이 필요한지를 먼저 입증하라'며 정신감정 신청을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약 2번에 걸친 공판기간 동안 피고인에게 왜 정신감정이 필요한지를 설명하였고, 재판부는 비로소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허락하였습니다.
위 사건의 실제 정신감정서 내용 중 일부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 회보가 도착하였는데, 감정서에는 '본 사건 범행 당시 (중략) 심신미약한 상태였으리라 판단됨'이라고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피고인과 가족들은 원심에 비해 감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저도 심신미약을 주장하여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심신미약이 받아들여지는 판결문을 받아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위 사건의 실제 항소심 판결문 중 일부
법원은 정신감정 결과 통보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 대한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한 감경을 하지 않았습다.
이렇듯 법원에서 심신미약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마시고 범죄 저지르면 처벌을 안 받는다는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참고로 이 사건은 피고인과 검사 모두가 항소한 사건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항소기각으로, 1심 결과대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항소심 판사는 위 정신감정 결과를 보고 심신미약 감경을 하지는 않았으나, 검사의 양형부당 항소를 기각하는 자료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고 카카오 채널을 통해 상담 예약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