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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다은 변호사 Apr 01. 2023

필름끊김, 블랙아웃, 만취의 차이점에 따른 법원의 판단




28세 A는 술집 앞에서 술에 취한 18세 B를 만났습니다.

A와 대화를 하던 B는 겉옷을 두고 왔다고는 하지만 어느 술집에 옷을 두고 왔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B는 걸어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A와 B는 함께 옷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2층부터 5층 사이를 돌아 다니면서 옷을 찾아다니다가 함께 모텔로 가게 되었습니다.

A가 B를 데리고 모텔로 이동하는 모습을 CCTV로 확인해 보았을때, B는 스스로 걸을 수는 있지만 종종 휘청거리거나 벽에 몸을 기대는 등 완전히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후 B의 부모님은 연락이 되지 않는 B를 찾기 위해 경찰에 연락을 하였고, 경찰은 인근 모텔에서 B를 발견하였습니다.

발견 당시 B는 침대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B의 속옷은 A의 상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A는 B가 모텔에 가자고 먼저 이야기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를 입증 할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글을 쓸때 신경쓰는 부분 중의 하나가 누구든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작성하는 것인데요.


오늘은 글 제목부터 어렵고 친숙하지 않은 여러 단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사실관계도 중요한 부분이 많다보니 상당히 길어지게 되었는데요.


많은 단어와 복잡한 상황들이 각각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서 연결되어 있다보니, 이번 글로 한번에 설명을 드릴 수 밖에 없었는데요.


우선 블랙아웃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주 후에 있었던 일이나 행동에 대해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데요.


이런 경험은 음주를 하다보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필름이 끊긴 상태중에서도 특정한 상태를 의학용어로는 알코올 블랙아웃(Black out)이라고 표현하고, 법조계에서도 이 용어를 받아들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블랙아웃에 대한 법원의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의학적 개념으로서의 ‘알코올 블랙아웃(black out)’은 중증도 이상의 알코올 혈중농도, 특히 단기간 폭음으로 알코올 혈중농도가 급격히 올라간 경우 그 알코올 성분이 외부 자극에 대하여 기록하고 해석하는 인코딩 과정(기억형성에 관여하는 뇌의 특정 기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행위자가 일정한 시점에 진행되었던 사실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알코올 블랙아웃은 인코딩 손상의 정도에 따라 단편적인 블랙아웃과 전면적인 블랙아웃이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알코올의 심각한 독성화와 전형적으로 결부된 형태로서의 의식상실의 상태, 즉 알코올의 최면진정작용으로 인하여 수면에 빠지는 의식상실(passing out)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블랙아웃의 정확한 의미가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필름이 끊긴 상태가 모두 블랙아웃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정상적인 행위와 사고가 가능함에도 단기간에 섭취한 알코올의 영향 등으로 기억만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법원에서는 법리적으로 블랙아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더 상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음주 후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을 당하였음을 호소한 피해자의 경우, 범행 당시 알코올이 위의 기억형성의 실패만을 야기한 알코올 블랙아웃 상태였다면 피해자는 기억장애 외에 인지기능이나 의식 상태의 장애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지만, 이에 비하여 피해자가 술에 취해 수면상태에 빠지는 등 의식을 상실한 패싱아웃 상태였다면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준강간죄 또는 준강제추행죄에서의 심신상실·항거불능’의 개념에 비추어, 피해자가 의식상실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지만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할 능력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저항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였다면 ‘항거불능’에 해당하여, 이러한 피해자에 대한 성적 행위 역시 준강간죄 또는 준강제추행죄를 구성할 수 있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블랙 아웃 상태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지만, 본인의 활동에 대해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의사표시 등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완전히 만취하여 의식을 상실하였거나, 의식은 있으나 정상적으로 의사표현이나 행동이 불가능한 경우와는 구별하여야하고, 그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 블랙아웃이 흔하게 문제가 되는 범죄의 종류 중 하나가 성범죄입니다.


피고인쪽에서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성관계에 대해서 동의의 의사표시를 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피해 전후에 신체활동이 가능한 것이 확인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해서 전혀 기억이 없는 상태인 경우 블랙 아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상태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의사형성이나 표현이 가능하였다면, 블랙 아웃 상태였음이 인정되어 성범죄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 사건에서도 A는 B가 만취상태가 아니었으며, 모텔에 가자는 이야기를 B가 먼저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B는 본인이 만취한 상태였다고 주장을 하였고, 당시 B의 음주량과 음주시간, 전후 상황 등을 보았을때에도 B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A의 말처럼 B가 정상적인 상태로 보였다는 증거들도 몇가지 있었는데요.


이렇게 상반되는 증거들이 있는 경우에는 여러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상황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A의 주장은 법원에서 인정되었을까요?




2심에서 피해자가 본인의 옷을 찾기 위해서 2층에서 5층까지 돌아다니고, 두사람을 목격한 증인이 피해자가 본인의 이름을 또박또박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며, 외관상 많이 취해보이지 않았다는 증언에 무게를 두고, B가 성관계에 동의를 하였음에도 이를 기억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A의 주장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에따라 2심에서 A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하였을까요?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짧은 시간 동안 다량의 술을 마셔 구토를 할 정도로 취했다. 자신의 일행이나 소지품을 찾을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건 당일 처음 만난 피고인과 함께 모텔에 가서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들었다. 피해자는 인터폰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이후에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찰이 모텔 객실로 들어오는 상황이었음에도 옷을 벗은 상태로 누워 있을 정도로 판단능력 및 신체적 대응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였다. 이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이 추행을 할 당시 술에 만취하여 잠이 드는 등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앞서 본 바와 같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연령 차이, 피해자가 피고인을 만나기 전까지의 상황, 함께 모텔에 가게 된 경위 등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가 피고인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볼 정황을 확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제반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블랙아웃이 발생하여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피해자가 동의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이를 합리적 의심의 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모텔 객실 내에서 성적 관계가 이루어진 경위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은 합리성이 없다.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피고인과 자발적으로 키스를 하던 피해자가 피고인이 양치를 하는 짧은 순간에 스스로 옷을 벗고 잠이 들어버렸다는 것은 선뜻 믿기 어렵다. 피해자가 상의와 팬티, 속바지까지 벗으면서 굳이 치마를 입고 잠이 들었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고 피해자의 평소 습관과도 배치된다(피해자의 속옷이 피고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사정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 역시 석연치 않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생각하고 모텔에 갔다는 취지로 주장하면서도, 피해자가 잠이 들어 성관계가 불가능해진 위와 같은 상황에 당황하는 등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폰을 받고서는 경찰 또는 피해자의 가족이 왔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심신상실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추행하였던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대법원은 여러 정황을 근거로 들어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설명을 하자면, 피해자의 상태가 블랙아웃이라고 한다면, 피해자의 당시 상황으로 보아 행동에 특별히 제한이 없었으며,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만취 상태로 인식되지도 않으니, 상대방인 피고인 입장에서 성관계에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만하나 충분한 사정이 있고, 결국 피고인에게는 강간의 고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피고인의 진술에는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피고인의 행위 당시 피해자가 만취 상태였음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유죄로 판단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법원은 피해자가 당시 블랙아웃 상태에 있었다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나, 피해자가 블랙아웃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블랙아웃을 주장하거나 블랙아웃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그 법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증거를 수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법조인이 아닌 분들이 스스로 하기는 어렵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부분들이 결국 큰 결과로 돌아오는 일들이 흔히 있습니다.


전문가와의 체계적인 상담과 준비를 통해서 사건을 대비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채다은 변호사 홈페이지 : www.채다은.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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