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5년의 중반도 지나가고 있다.
정신과 병원을 다니며 치료한 지도 8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나의 상태는 여전히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그저 하루살이처럼 지내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통스럽던 약 적응기를 거쳐 어느덧 약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색무취의 사람처럼 감정 동요도 크지 않은 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즐거울 것도, 기대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바닥을 치는 기분도 아닌 '중간 기분'의 상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이런 기분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우울증을 전보다 많이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는 나 자신도 발견했다.
집에서는 무언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괴로운 날들이 많았다. 보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좀처럼 없었기에, 그저 내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지냈다.
자서전, 소설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책 속 주인공들 이야기를 읽다 보니
점점 내가 이러는 게 '꾀병인가?'라는 의심도 나 자신에게 들었다.
분명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아픈 사람, 괴로운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이 정도면 입에 풀칠하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고, 내가 이토록 삶이 고통스러운 것도 그저 나에 대한 연민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닌가 싶었다.
솔직하게 병원 담당 선생님께 돌려 돌려 말을 건넸더니 명확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본인이 꾀병인지 질문을 주시는 것 같은데, 절대 꾀병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덜 아프고, 더 아픈 것도 본인 외엔 누구도 가늠할 수 없어요. 본인 꾀병 절대 아니에요. 분명 금방 좋아질 거예요."
20분의 시간 동안 솔직한 나의 고민에 위로하듯 주시는 답변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또 나 자신에게 의심하고 채찍질하려 했던 모습에 속상해졌다.
그래도, 나 스스로를 조금 알아가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터널을 지나며 나를 좀 더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인정하고자 하는 여정을 천천히 걷고 있다.
아직은 모든 게 명확하지 않지만, 이 과정 자체가 나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임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태극 문양(음양(陰陽)) 문양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어둠 속에도 밝음은 있고,
밝음 속에도 어둠은 있다.
그런 것이 바로 우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