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의 주州 나무 이야기
바야흐로 가을, 단풍의 계절이다. 이곳에도 가을이 성큼성큼 들어차는 중이다.
자작나무도 단풍이 든다는 걸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은행처럼 노란 단풍이다. 단순한 것도 아주 멀리까지 와서야 알게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나다.
그래서 자작나무 단풍이 이렇게 곱구나 감탄했는데 자작나무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 자작나무가 아니었고, 내가 자작나무라 여겼던 것은 자작나무가 아니라 사시나무였으며, 사시나무가 자작나무와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은 그 다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런 것도 몰랐다니. 부끄러워하기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나는 담담히 사시나무 단풍이 이렇게 고왔구나 정정하여 감탄한다.
모르는 거 이야기하니 떠오르는 일화. 일전에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솔뫼가 말했다. 여기가 오래 전에 다 바닷속이었다고 했잖아. 이런 지형들이 바다 밑에 있었다는 건데 정말 신기하지 않아? 똑같이 바닷속인데 어딘가는 솟고 어딘가는 파인 거잖아.
나는 당연히 이것도 모르지만 뭐라도 답을 해주고 싶었다.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솔뫼는 내가 똑같은 걸 열 번 물어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답을 해주니까, 그 친절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그러게. 나는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바닷속도 땅 위처럼 똑같이 산이 있고 동굴 있고 계곡도 있고 그런대잖아. 뭐, 파도가 치니까 어딘가는 그 영향이 크고 어딘가는 또 작고…… 그게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다 다르니까…… 뭐 그런 거 아닐까?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마지막엔 얼버무리듯 끝을 맺었는데 그러고 나서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내 앎이라는 것이 너무나 얕고 피상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아는 게 없다는 사실만큼은 익히 알고 있는 나지만 이 정도로 얕을 줄은 몰랐던 거다. 그것은 마치 슬러시 수준으로 얇아 살짝 디디기만 해도 파사삭 깨져나갈 얼음장 같았다. 그래도 공교육 12년에 대학 교육도 받았는데 이렇게 무지할 수가!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좋아할 일만은 아니건만 너무 웃겨서 둘이 한참을 웃었다.
퇴적암의 형성, 바닷속 지형 이런 거 다 학교 다닐 때 배웠는데 말이지. 화강암, 사암 이런 것도. 나름 열심히 공부했는데 다 흔적 기관처럼 그런 걸 배웠다는 사실만 남아 있어. 어쩌면 좋지?
뭘 어쩌면 좋아. 평생 그렇게 살아온 거 앞으로도 슬러시처럼 얇디얇은 지식 수준으로 살아가는 거지.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몰라서 부끄러운 것들은 따로 있지. 그걸 모를 때 진짜 부끄러워야 하는 거고 몰라서 부끄러워질 것들을 알려고 하면 돼.
웃음 끝에 속으로 한 자문자답은 이러했고.
유타는 주州, state 나무가 사시나무Quaking Aspen일 정도로 사시나무가 많다. 재미있는 건 사시나무가 그렇게 자작나무랑 비슷하게 생겨서 인터넷 검색하면 사시나무와 자작나무 구분하는 법, 이런 게 뜨는데도 엄연히 다른 나무라는 것.
목부터 다르다. 계문강목과속종할 때 그 목. 이게 뭔지 몰라도 상관없다. 나도 이런 게 있다는 기억만 남아 있고 찾아봐서 쓰는 거니까. 여튼 둘 다 식물계(너무나도 당연. 나무인데 동물이라면 재미있긴 하겠다!)-현화식물문(일정한 발육을 한 뒤에 꽃이 피고 수정 후 씨를 맺는 식물이라고 함. 그럼 다른 경우는 뭐지, 싶어 찾아봤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서 패스하는 것으로)-목련강(이하 동문)인 것까진 같은데 자작나무는 참나무목-자작나무과-자작나무속-자작나무종이고, 사시나무는 버드나무목-버드나무과-사시나무속-사시나무종이다. 이렇게나 다른 나무들이 어떻게 이처럼 비슷한 외양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어쩌다 보니?
유타의 주 나무는 한 번 바뀐 것이라 했다. 원래는 푸른가문비나무였는데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문제 제기를 했단다. 사시나무가 푸른가문비나무보다 더 흔하고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유타에 더 어울린다고. 2014년 주지사가 이를 받아들여 주 나무를 변경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그때부터 사시나무가 유타의 공식 주 나무가 되었다는 훈훈한 결론.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나무가 뭔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훌륭한 학생들이 아닐 수 없다. 생각난 김에 찾아보니 서울 시목은 은행나무, 시화는 개나리. 부산은 동백나무, 동백꽃. 광주는 은행나무, 철쭉이다.
학생들 말대로 사시나무가 정말 많아서 살면서 볼 사시나무들을(이런 것에도 총량이 있다면) 여기서 다 보는 것 같다. 사시나무 떨 듯, 이라는 관용 표현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시나무는 정말 자잘하게 움직인다. 부드러운 실바람에도 사그락 사그락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보통 사시나무 떨 듯 떤다고 하면 두렵거나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내가 본 사시나무의 흔들림은 전혀 다른 정서였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자그마한 이파리들이 샛노랗게 빛나며 손을 흔들어주는, 속닥속닥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 따뜻한, 눈부신, 아름다운 같은 형용사가 어울릴 법한 풍경이었다.
내가 해 좋고 선선한 가을 한낮에 사시나무들을 보아서 그런 것일 게다. 얼어붙게 추운 한겨울 한밤 잎 다 떨군 사시나무숲이라면 전혀 다르게 보일 테지. 이렇게 감정은, 정서는 각자의 경험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입력된다. 앞으로 사시나무 떨 듯, 이라는 관용구를 보게 되면 나는 이곳에서 본 노란 이파리들과 사그락 사그락 다정한 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시나무 떨 듯, 이라는 관용 표현은 요즘은 잘 쓰지 않게 된 듯하다. 글에서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네. 나처럼 사시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당신은 사시나무를 알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