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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헌 Nov 01. 2023

22. 얼쑤덜쑤 오프로드 단풍 여행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따라 바운티플 피크로

사시나무 덕분에 노란 단풍은 실컷 봤는데 빨간 단풍을 많이 못 봤네. 스치듯 했던 말에 곧바로 빨간 단풍 여행을 계획한 솔뫼. 근데 오프로드야. 괜찮겠어? 그으럼! 오프로드, 익스트림, 익사이팅, 덜컹덜컹 요런 거 좋아하는 솔뫼는 신이 났고 나는 단풍에만 집중했다. 단풍을 보는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오프로드 단풍 여행의 행선지는 바운티플 피크Bountiful Peak. 바운티플은 데이비스 카운티Davis County의 도시로 몰몬 성경에 나오는 도시 이름을 딴 것이라고. 1985년까지는 데이비스 카운티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가 레이톤시(그 불교 사원 왓 다마구나람이 있던!)가 커지면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단다. 


바운티플 피크를 가는 경로는 여러 가지인데 솔뫼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를 선택했다. 이름 그대로 하늘과 맞닿은 능선을 보며 달릴 수 있는, 근데 이제 그게 오프로드인 코스. 


이렇게 단풍을 보며 몇 시간이고 달릴 수 있다! 얼쑤덜쑤!


오프로드 시작 지점에 도착한 솔뫼는 차를 세웠다. ‘오프로드 좋아 오프로드 씬나 사람’이지만 걱정이 되었나 보다. 주차장에는 1인 1버기카로 오프로드를 신나게 달리고 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고 솔뫼는 그들에게 자신의 차로도 갈 수 있을지 물었다. 


솔뫼의 차는 AWD, 올휠드라이브All Wheel Drive. 4WD가 아니라 걱정을 한 것이었다. 보통 차바퀴가 네 개고 네 개의 바퀴가 모두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앞바퀴 두 개만 돌거나 뒷바퀴 두 개만 돌거나 해서 2WD, 이륜구동이라고 부른다는 건 여기 와서 알았다. 네 개가 다 도는 게 4WD. 차바퀴가 네 개니까 4WD나 AWD나 그게 그거 아닌가 했는데 솔뫼가 다르다고 했다. 어떻게 다른가 솔뫼답게 상세하고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자동차는 색 정도 겨우 구분하는 나는 당연히 알아먹지 못했고 여튼 다르다, 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그들은 솔뫼의 차를 보더니 당연히 갈 수 있다고, 일반 승용차로도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대답했다. Of course! You can do it! Enjoy it!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할 수 있다고, 해보라고 즐기라고 말해줄 것이다. 


솔뫼가 미국인들의 격려를 받으며 고무되는 동안 나는 안내판을 읽었다. 곰에 관한 안내가 있었다. 곰이 나오니까 조심하라는 게 아니고 곰한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정확히는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캠프 사이트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라는 것!). 음…… 여기 사람들은 곰을 보면 먹이를 주나 보지? 곰돌이 푸의 나라 사람들이라 그런가. 


하긴 곰 나온다고 조심할 사람들은 애당초 이 길을 안 갈 테니 후자의 안내가 인간과 곰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이긴 하겠다. 곰한테 먹이 주지 말자, 를 먹이 되지 말자, 로 읽으며 담담히 사진을 찍었다. 곰 먹이가 되면 또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내 생은 여기까지구나 해야지, 이게 운명이다 하는 거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렇게 각자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얼쑤덜쑤 오프로드 단풍 여행을 시작했다.      



얼: 여긴 총기의 민족이었어 

조금 올라가려니 낯선 소리가 들린다. 탕, 타앙! 뭔가 하고 보니 총소리다. 맞다, 총칼할 때 그 총. 나는 미국에 있다는 실감을 여전히 이따금씩만 하여 서울시 마포구 솔렉동 사는 정도의 느낌일 때가 많은데 이 광경을 보니 여기가 미국은 미국이구나 싶었다. 


가족인 듯한 이들은 계곡을 향해 서서 주황색 클레이를 날리고 그걸 쏘았다. 거기가 그런 장소인지 마른 계곡을 따라 주황색 클레이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성인 남자가 이제 갓 걸음마를 뗐을 법한 아이에게 헤드셋을 씌워주고 아이는 앉은 채 다리를 달랑거리며 총 쏘는 걸 구경했다. 저렇게 익숙해지겠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총 쏘는 걸 보고 자라 커서는 직접 총을 쏴보기도 하고 주황색 클레이를 맞추면 신나하기도 하면서……. 


굽이굽이 길을 돌 때마다 비슷한 지점에서 주황색 클레이를 날리고 총을 쏘는 사람들이 있었고, 더 위쪽에서는 아예 엎드려서 총을 쏘는 이를 보았다. 그의 옆에는 탄피가 한 줌도 더 되게 널려 있었다. 예고 없이 총 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총 쏘는 소리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멀리서 들을 때는 탕, 타앙! 이런 소리였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총소리는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음이었다. 굉음, 몹시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 저 사람은 클레이도 없는데 뭘 쏘는 거지? 사냥하는 거야. 사냥? 솔뫼의 대답에 나는 다시 한 번 여기가 미국임을 떠올렸다. 사냥…… 사냥을 하는구나. 사슴이나 엘크 같은 동물 사냥을 취미로 즐길 수 있구나. 


다 개인 취향이고 총기를 허용하는 나라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거지만은 나는 조금 할 말이 없어졌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듣게 되는 미국의 총기 관련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떠올라서였다. 


총을 허용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닐 것이다. 총을 허용하지 않아도 사람 죽일 인간들은 사람을 죽인다. 칼로 끈으로 심지어 맨손으로도 죽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총이 있어서 더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다. 다른 도구로 한두 사람 죽일 동안 총은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쉬 앗아간다. 


이런 무기를 이곳에서는 일정한 나이만 되면 구입할 수 있다. 미국이 총기를 허용하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와 더불어 총기 관련 업계의 입김이 세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자기 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하고 꼭 나쁘게만 쓰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취미’로도 즐길 수 있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엔 머리가 좀 많이 복잡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졌고 나와 솔뫼는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살짝 왼편 파랗게 보이는 부분이 솔트레이크 호수 :)


쑤: 당신들은 흙먼지를 좋아합니까? 

오르는 동안 버기카를 타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마주쳤다. 솔뫼는 재밌겠다, 타보고 싶다며 부러워했지만 나는 음…… 별로……. 일단 버기카는 너무 뼈대만 있다. 앞유리도 옆유리도 뒷유리도 없이 뻥 뚫려 있다. 왜지? 왜 저렇게까지 뼈대만 있는 거지? 지나치게 오픈 마인드인 사람을 보는 것 같달까. 낯가리는 나로서는 조금 물러서게 되는 그런 어떤…… 개방성을 가졌다. 솔뫼가 그래서 재미있는 거지, 라고 했지만 역시나 나는 공감하지 못하였고……. 


겁이 나는 건 차치하고 저 뿌옇게 이는 흙먼지가 앞으로도 옆으로도 뒤로도 들어오는 게 너무……. 저걸 30분만 타도 흙강아지가 될 것 같은데. 흙먼지 가득 묻은 옷을 세탁기에 돌려도 될까? 세탁기 고장나지 않으려나? 잘 털어지지도 않을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며 귓바퀴에도 다 들러붙을 텐데. 샤워 한 번으로는 안 될 거야. 으, 생각만 해도 괴롭다, 괴로워. 그래서 재미있는 거라고! 솔뫼가 거푸 말했고 나는 버기카와 이렇게 또 한 발짝 멀어지게 되었다.      



덜: 오, 보이! 

눈만 마주치면 하이, 하우 알 유, 하는 나라 사람들답게 오르내리는 동안에 차 안에서도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사성 하나는 참 밝은 사람들. 


올라가는 길에 사진을 대략 1천 장 정도 찍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총이고 흙먼지고간에 단풍은 붉고 주홍빛이고 노란빛이고 똑같은 풍경이어도 여기서 볼 때랑 저기서 볼 때가 다른데 각기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다 비슷해 보이는데? 놉! 절대 아니다. 비슷한 것 같아 보여도 조금씩 다 다르고 다 다르게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 오르자 솔트레이크 호수가 눈앞에 보였다. 아름답다! 


어찌하여 자연은 이다지도 아름답고 어떤 색이 섞여도 조화로우며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지 말이다. 그러느라 솔뫼는 거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차를 세워야 했는데 어느 지점에서는 너무 아름다워 둘 다 홀린 듯이 차에서 내렸다. 


먼저 도착해 풍경을 즐기는 이가 있었다. 청바지에 재킷, 부츠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탄 이는 흰머리가 성성한, 서양 사람 나이를 잘 분간하지 못하는(동양 사람이라고 잘하진 못한다만) 내가 봐도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우리가 인사를 하자 그는 자못 감격스럽다는 듯 풍경이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나는 그의 진심 어린 감탄에 감탄했다. 아름다운 걸 볼 때 아름답다 하고, 아름답다 느끼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 의외로 흔치 않아서. 뒷짐 지고 서서 뚱하게 바라보다 좋네, 한마디 하는 것도, 무감한 표정으로 사진 몇 장 찍고 마는 것도 같은 마음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같은 마음이라면 역시 나는 표현하는 쪽이 좋다.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왜 아름답게 보이는지 이 아름다움으로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기꺼운지 같은 것들을 나누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말하고, 기쁘고 흥분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 어리고 유치해보일지 몰라도, 요즘 말로 오그라든다는 핀잔을 들을지라도. 사랑스럽고 어여쁜 것들에 관해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쓰고 싶다. 나누고 싶다. 그런 사람들은 흔치 않아서 귀하고 그래서 그가 반가웠다. 


풍경에 대한 감탄과 감상을 나누고서 솔뫼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솔뫼의 친절에 또 한 번 감탄하며 포즈를 취했다. 솔뫼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는 정말 고맙다고, 덕분에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와는 도로를 달리는 동안 몇 번 더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말투와 표정에 배어나는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고, 나 또한 나이를 먹어서도 저렇게 기꺼이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행복한 날을 빌어주며 헤어졌고 그가 남기고 간 행복한 기운 덕분에 우리는 확실히 조금 더 행복해졌다.    


  

쑤: 덜컹대면 덜컹대는 대로 

나는 어려서부터 멀미가 심했다. 고속버스를 타면 특유의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다 누군가 오징어 땅콩 과자를 뜯으면 백이면 백, 토했다. 과자는 웬만하면 다 잘 먹고 좋아하는데 오징어 땅콩 과자는 언제나 불호였다. 비릿한 냄새도, 오도독거리는 식감도 싫었다. 비린 냄새가 고속버스 냄새랑 합해지면 속이 니글거렸고, 토했던 기억까지 더해지면서 더 싫어졌다. 요즘도 파는지 찾아봤더니 여전히 팔고 있다. 맛도 다양해졌다.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오래 사랑받고 있다니 다행이다. 


어렸을 때만 해도 비포장도로가 많았다. 할머니 집을 갈 때면 5시간 중 3시간 반 정도가 비포장 도로였다. 출발하기 전 키미테를 붙이고도 검정 비닐봉투를 몇 개씩 준비해야 했다. 적어도 두세 번을 토해야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구토는 안 하는데 잠을 잔다. 그게 잠멀미라는 걸 알려준 건 솔뫼였다. 왜, 차만 타면 잔다는 사람들 있잖은가. 그게 잠멀미를 하는 건데 내가 바로 그 잠멀미를 하는 사람이다. 기차, 버스, 지하철 등등 일단 탈것에 오르면 잠이 온다. 불면증을 아주 심하게 앓을 때조차 달리는 차 안에서는 쿨쿨 잘도 잤다. 인천에서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 다시 솔트레이크까지 날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내내 잤다. 자도 자도 또 잘 수 있었다. 기내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면 계속 잤기 때문에 긴 비행시간이 그리 괴롭지 않았고 시차 적응도 딱히 할 게 없었다. 잠멀미로 시차를 깨버린 시차 브레이커 되시겠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길 하냐면 갑자기 어릴 적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몇 개씩 돌돌 말아 가져갔던 검정 비닐봉지, 구토하기 직전 울렁거려서 엄마 나 토, 겨우 말하던 순간들, 먹은 것들을 게워낸 후의 찝찝함, 따갑고 미끈거리던 목구멍, 역한 냄새에 연거푸 구역질이 나던 일 같은 것들이. 그때처럼 괴로웠던 것도, 지나고 나니 그 기억들이 아련해진 것도 아니다만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이제 구토를 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지. 대신 졸려. 좋은 풍경을 실컷 보고 났더니 기분 좋게 나른했다. 덜컹대는 차에서 덜컹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솔뫼는 아무런 저항 없이 흔들리는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지금 이게 내 삶이야, 내가 딱 이렇게 살고 있어, 말했고, 그 말에 솔뫼는 또 웃었고, 나는 그저 그늘에서 한잠 자고 나면 좋을 것 같았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어느 하나 같지 않은, 신묘하게 다른 자연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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