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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헌 Nov 02. 2023

23. 이클립스하면 디카프리오

이클립스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배우다. 


어렸을 적부터 연예인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친구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배우들에 대체로 무감했다. 우리 오빠 너무 잘생겼어! 하면 그렇구나, 언니 너무 예쁘지 않아? 해도 그런가 보다……. 


아이들이 야간 자율 학습 시간마다 몰래 듣던 라디오 방송 같은 것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들으면 재미있긴 한데 광고가 자주 나와서 짜증났다. 몇 번 들어보려다가 광고 때문에 흐름 끊기고 요란한 광고를 들어야 하는 게 싫어 관두었다. 


그래도 공테이프로 좋아하는 노래 모음집을 만들어 본 적은 있다. 노래 녹음하려고 녹음 버튼 위에서 대기 타고 있는데 디제이가 멘트 치거나 노래 나오다가 광고 때문에 중간에 끊기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노래 테이프를 선물하기도 하고 친구의 삐삐 음성 메시지에 남기기도 했다. 아는 사람만 알 얘기다. 


여튼 그랬던 나도 좋아했던 연예인들이 몇 있긴 했다. 세 명 정도 떠오르는데 둘은 입에 담고 싶지도 않고 그나마 언급할 수 있는 이름으로 남은 이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나는 그를 영화 <타이타닉>에서 처음 보았다. 물론 그 존재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지만(책받침, 엽서, 잡지 이런 것들로. 이것도 알 사람만 알 얘기!)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를 제대로 본 건 그게 처음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영화관 앞에 넓적한 S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던 긴 줄.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그 사이에 친구들과 끼어있던 나. 내가 떨린다고 하자 뒤에 서 있던 언니들이 들었나, 쟤 떨린단다, 라고 비웃었고 안 봐도 그 언니들이 어떤 언니들일지 알 것 같았던 나는 못 들은 척 발만 동동 굴렀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상영관에 들어가고 영화가 시작되고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 우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콘서트가 아니라 영화관이었기 때문에 분명 함성이 아니고 각자는 낮은 소리로 탄성을 내지른 것인데 모두가 탄성을 내지르니 그것은 함성이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 실도랑 모여 대동강, 적소성대 수적성천이 아닐 수 없었고, 순간 그 안에 있던 모든 이가 디카프리오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하릴없는 이들 중 하나였다. 


영화는 웃기다가 짜증났다가 사랑스러웠다가 무서웠다가 화가 났다가 불안했다가 애절했다가 슬프고도 아련하게 끝이 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이 흘러나오는 동안에도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잭……. 로즈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나중에는 목숨까지 던져 로즈를 살려준 잭. 아마도 나는 이때 사랑이라는 게 뭔지 처음 배운 것 같다. 상대의 세상을 확장시켜주고 그가 그 자신으로 살게 하고 그를 위해 줄 수 있는 모든 걸 기꺼이 내어주는. 잭은 그 자체로 사랑이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빚는다면 딱 ‘그때의’ 디카프리오일 것이었다. 눈빛이, 목소리가…… 그냥 다 사랑이었다. 



그렇게 처음 연예인, 그것도 이름도 낯선 외국인 배우에게 빠지게 된 나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토탈 이클립스>도 보게 되었다. 


<토탈 이클립스>는 천재 시인 랭보와 그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시인 폴 베를렌에 관한 이야기로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침울하고 어두컴컴하고 그래서 좀 지루했다……는 정도의 감상만 남아있는 가운데 거기서도 디카프리오는 빛이 나게 아름다웠다. <타이타닉>에서는 어이없을 만치 대담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다정하고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가 여기서는 우울하고 어둡고 예민한 모습을 보여주어 새로웠고 그게 문외한인 내 눈에도 기가 막히게 어울리고 매력적이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단순히 잘생겼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담고 싶지 않은 어마어마한 매력과 재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참 좋아했다. 그가 특정 연령 이상의 여성과는 절대 사귀지 못하는 병을 가진, 편협되고 미성숙한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이제 그는 나에게 기후 위기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근데 그걸 전용기를 타고 다니면서 해서(엄청난 탄소발자국!)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할리우드 셀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타이타닉>은 내게 여전히 최고의 영화로 남아 있다. 제일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라고 하면 이제 어떤 시네필들이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로온? 아, 채헌님은 그런 영화 좋아하시는구나, 하며 혀를 차겠지만은. 너무 좋아서 소장도 하고 있고 책이든 영화든 같은 작품 두 번은 잘 안 보는데 <타이타닉>은 가끔 생각날 때마다 본다. 볼 때마다 새롭게 아련하고 마음 아프고 감동받고 그런다.      


이클립스를 보러 간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건데…… <타이타닉>과 디카프리오 이야기만 늘어놓았네. 글이라는 게 그렇다. 이걸 쓰려 했는데 저걸 쓰게 된다. 가만 생각하면 글만 아니라 인생도 그렇다. 그러니까 이클립스, 일식을 보러 가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미지는 모두 네이버 영화에서.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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