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일식 여행 ① 델타로 가는 길
이클립스, 일식은 무엇이냐. 일식은 날 일日 자에 좀먹을 식蝕 자를 써서 태양이 좀먹듯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달은 지구 주위를 돈다. 각자 다른 궤도, 다른 속도로 도는데 돌고 돌고 돌다 보면 이 셋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우연찮게, 어쩌다 보니, 공교롭게도 지구-달-태양 순으로 쪼로록 서게 되는 이때에 일식이 발생한다. 달이 태양을 전부 가리면 개기 일식, 부분만 가리면 부분 일식, 달이 태양의 정중앙만 가려 고리 모양의 테두리를 남길 때를 금환 일식이라고 한다.
일식은 여기서도 볼 수 있어. 여기서 ‘여기서’란 솔트레이크시티. 하지만 부분 일식이지. 우린 금환 일식을 볼 거야. 그러려면 남서쪽으로 가야 하지. 위치에 따라 달과 태양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보다 남서쪽이어야 완벽한 금환 일식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보다 남서쪽이라면…… 한국 지리도 모르는 내가 미국 지리를 알 리가. 솔뫼가 고심 끝에 한 곳을 짚었다. 델타. 여기로 가야 해.
지리상의 위치도 위치였거니와 델타는 솔뫼가 여러 차례 가본 곳이라 익숙한 곳이었다. 델타가 어떤 곳이냐 묻자 솔뫼는 간단하게 답했다. 인구가 3천 명 좀 넘고 신호등이 딱 하나야. 10년도 훨씬 전에 솔뫼가 처음 델타에 간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거의 백인들만 살아서 솔뫼가 처음 갔을 때는 신기한 듯 쳐다보는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동양인을 태어나 처음 보아 기분 나쁠 만큼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그나저나 3천 명이면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한 학교 학생과 엇비슷한 수다. 델타 면적은 약 22제곱킬로미터.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와서 찾아보니 서울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3천 배가 넘는 크기다. 축구경기장 3천 개 크기 도시에 3천 명이 좀 넘게 사는 거니 산술적으로는 한 명이 축구경기장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셈. 논밭이며 목축하는 초원, 공장, 황무지의 비중이 클 테니 실제 인구 밀도야 다르겠지만. 다닥다닥 붙어서 숨도 겨우 쉬고 사는 서울시민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일식 여행을 앞두고 짐을 꾸렸다. 일식을 본 후에는 트레킹을 할 예정이라 음식을 충분히 챙기고(트레킹을 안 했어도 충분히 챙겼겠지만) 기본 짐에다 일식을 여유롭게 즐길 캠핑 의자, 숙소의 청결도가 못미더워 급히 구매한 슬리핑백까지 챙겨 넣으니 2박 3일 일정인데 또 두 달은 살러 가는 사람 모양새가 되었고, 솔뫼는 바리바리 짐을 든 나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특별한, 빼먹지 말아야 할 준비물은 일식 관람용 안경. 평범한 셀로판지처럼 보이지만 평범한 셀로판지는 아닌 검은 필름이 대어진 종이 안경은 솔뫼가 동료에게 얻어 왔다. 안경테와 다리에 태양 사진과 다음의 일식 정보 같은 것들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는, 누가 봐도 일식이 와서 너무 신난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안경이었다.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정중하게 사양하고팠지만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써야 했다. 이왕 만들 거 좀 예쁘게 만들 순 없을까요? 라고 하면 이걸 만든 사람은 필시 예쁘게 만든 건데요! 라고 자신 있게 답하겠지. 예, 당신의 취향 존중합니다.
눈 아래쪽으로 얼굴을 다 가릴 수 있는 마스크도 챙겼다. 아니다, 이걸 마스크라고 부르기는 아쉽다. 찾아보니 페이스 커버라고도 한다. 이게 더 적절하겠다. 이름처럼 딱 눈과 이마만 빼고 다 가려준다. 귀에 거는 형식의 나풀나풀한 천인데 골프칠 때들 사용하는 모양이다. 한창 등산에 재미 붙였을 때 해 가리기용으로 샀는데(모자로는 얼굴이 다 가려지지 않는다고!) 사놓고 한 번인가 썼다. 가벼운 천이라 편하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해를 가려주긴 하는데 숨 쉴 때마다 나풀거리는 천이 입에 들러붙어 걸거치고 물 마시거나 쉴 때 뺐다 걸었다 하는 게 성가셨다. 그래서 처박아두었는데 미국에 와서 일식 볼 때 쓰게 될 줄이야. 이래서 뭐든 사두면 다 쓰게 되어 있다…… 가 아니고, 이렇게라도 쓰이게 되어 정말이지 다행이다.
델타로 달리는 내내 솔뫼는 놀라웠다고 했다. 나는 달리는 내내 잤기 때문에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델타로 가는 차들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자는 동안 잠깐씩 깨서 물도 마시고 주변도 둘러보았던 나로서는 헐빈한 도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게 ‘그렇게 많은’ 축에 속한다니 그게 더 놀라웠다. 대체 사람이 얼마나 없는 거야.
솔뫼의 감탄은 델타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사람이, 사람이 너무 많아……! 어디? 사람들이 어디 있어? 아무도, 까진 아니었지만 가족, 친지 혹은 연인, 친구 기타 등등으로 보이는 그룹들이 몇 보일 뿐 동네는 대체로 휑했다. 캠핑장에 캠핑카가 많아 보이긴 했는데 놀랄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캠핑장이니까 캠핑카가 있군, 싶었는데 솔뫼가 신기해하니까 나도 덩달아 신기해하게 되었다.
솔뫼는 델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에 흥분을 살짝 넘어 감격한 듯 보였고 그것은 마치 일식 관람용 안경을 만든 사람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으나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놉, 난 그 정도는 아냐. 음, 자꾸 선을 그으시는데 말이죠. 제 눈엔 다 또이또이거든요.
이른 저녁이라 할지 늦은 오후라 할지 애매한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을 먹기 전 토파즈 뮤지엄에 들렀다. 솔뫼는 이미 가보았던 곳으로 이곳에 관해 설명하면서 솔뫼는 아주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들어보니 그럴 만한 곳이었고 나 또한 이곳을 보며 아주 아주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아주 아주 복잡하여 이어서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