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일식 여행 ② 토파즈 뮤지엄
당신은 얼마나 한국인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무어라 답하겠는가?
나라면 우선 얼마나 한국인이고 뭐고간에 일단 한국이 싫다, 고 답하겠다. 국가는 나에게 소속감을 씌우려 이래저래 용을 쓰지만 나는 평소 한국인이라는 자각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데 대한 자부도 거의 없다. 외국 나가면 애국자 된다고들 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어디나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나쁘다. 한국도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가진 흔한 나라들 중 하나고, 나는 한국을 조금 더 세세하게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가지게 되는 은은한 염오가 있다. 잘 알아서 좋은 것만큼 잘 알아서 싫은 것도 많다.
어떤 개인의 성취를 두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는 말도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냥 그가 멋지고 대단한 거지, 그는 그고 나는 나일 뿐이다. 국적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완전히 별개의 타인. 그렇게 따지면 인류 모두의 성취가 자랑스럽고 기뻐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인간이라는 종의 공통점이 있으니까. 내가 지향하는 바는 이것이나 ‘일반적인’ 여론이란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의 성취를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좀 더 쉽고 다양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기쁨 정도는 있겠다. 근데 그게 뭐? 그런 성취가 없었다면 알은체도 않았을 이들, 이를테면 해외 입양인이라든가 한국인의 4대 후손쯤 되어 한국인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비백인 외국인 등등, 을 그럴 때만 어떻게든 한국계 운운하며 한국인으로 욱여넣어 추어올릴 때면 그깟 소소한 기쁨 따윈 거절하고 싶도록 민망할 따름이다.
어찌하여 영광은 나누지 않으면서 수치는 이토록 쉽게 나눠 지게 되는가. 그저 내가 문제일 지도 모르겠으나.
그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욕해도 괜찮은가? 내가 괜찮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는가. 욕하고 싶어 하겠지, 욕할 만하니 하겠지. 개고기 먹는 나라? 아닌가? 효율과 성과에 혈안이 된 일중독자들의 나라? 아닌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나라? 아닌가? 상대가 얕게 뱉고 보는 말이라면 대응할 가치가 없고(거위 살찌워서 간 빼 먹는 인간들은 좀 닥치시고요) 그런 게 아니라면 나도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싶다. 그러게요. 대체, 이 나라는, 뭐가, 문제일까요?
한국을 모욕하고자 나를 욕한다면 나 말고 한국을 욕하라 할 것이고 나를 모욕하고자 한국을 욕한다면 아둔한 자들이라 혀를 차겠다. 한국 욕은 내가 더 하고 싶어, 이 사람들아. 그것보다 문제인 게 얼마나 많은데 알지도 못하고 떠들고들 있어, 쯧.
하지만 이렇게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옅은 나라도 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가 생기면 국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국내라면 경찰과 법원, 행정부에 의지할 테고, 국외에 있다면 대사관부터 찾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갖는 세계적 위상에 따라 나의 어떤 부분들이 결정되고 한정된다. 당장 여행만 간다 해도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180개국이 넘는다. 외국에서 나는 나라는 개인이기 이전에 한국 사람으로 인지된다. 한국 혹은 한국인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내게 적용된다. 간혹 한국 좋아요, 한국 사람 좋아요, 같은 말을 들으면 나는 어정쩡하게 웃게 된다. 싫다는 것보담야 낫겠지만 나는 한국도, 그가 아는 한국 사람도 아니다. 다행이에요, 아직 나쁜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내가 ‘너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기도 한다. 대단한 게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순간들이다. 오사카에서 지낼 때 마트 계산대에서 지체되어 내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면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뒤에 선 누구도 재촉하지 않고 계산원도 느긋한데 나만 조급해서 빠르게 빠르게 물건을 비닐봉투에 담았다. 버스에서 내릴 땐 하차문 앞에 미리 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한국에선 안 그러면 벨을 눌러도 급히 문을 닫아버리거나 안 열어줘버리니까. 한국 버스에 정차 후 천천히 내리세요, 라는 안내문이 온데 붙어 있지만 그 말을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랬다간 배차 간격에 쫓기는 기사에게 짜증 섞인 타박을 듣거나(미리 나와 있어야지, 아가씨!) 그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야 한다(한 정거장 정도는 걸어도 되지, 흑흑).
혹은 이런 경우에. 오사카나 교토 등지를 여행하다 100년 넘은 가게, 번듯한 건물, 오래된 유적을 자랑해놓은 걸 보면 별 수 없이 빈정이 상했다. 어떻게 100년 넘은 가게, 건물, 유적이 이렇게나 많으실까. 이거 다, 응? 제국주의 시대에, 응? 조선 같은 식민지들 고혈 짜내 만들고 쌓으신 것들이잖아요?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우실까들, 떼잉, 쯧.
이런 일도 있었다. 솔뫼의 미국인 상사 미스터 제이와 식당에 갔을 때 어쩌다 보니 나와 솔뫼가 테이블 안쪽 자리에 앉게 되었다. 서양에서도 상석의 개념은 있는 걸로 아는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솔뫼도 잘만 먹고 그 식사를 하는 내내 나만 신경이 쓰였다. 그를 안쪽에 앉혔어야 했는데……. 나중에 나의 불편함을 털어놓자 솔뫼가 왜 이렇게 한국인이냐며 깔깔 웃었다. 그러게,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한국인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미스터 제이와 또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고 나는 괜찮다는 그를 부득불 안쪽 자리에 앉혔다. 그러고 나니 위장약 광고 속 모델마냥 속이 편안-해졌다. 평소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게 나이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주제에 연장자가 수저를 들고서야 수저를 들고 음식을 퍼갈 때도 연장자에게 먼저 권한다. 국적과 상관없는 기본적인 예의이고 매너라 해도 우습게도 이럴 때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나는 이런 걸 한국에서 배운 한국 사람이라. 캐주얼한 자리에선 누구도 상관 안 하는데, 심지어 솔뫼조차도, 나만 열심히 상관하고 개의하고 있다. 그럴 때면 나 지금 너무 한국인이야, 완전 쏘 코리안, 혼자 조용히 놀라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이라는 자의식은 낮지만 어쩔 수 없이 너무도 한국인인 내게 누군가, 그렇다면 너의 나라가 저지른 범죄와 악행을 이유로 너를 차별하고 제재하면 어떠한가, 묻는다면 또 무어라 하겠는가.
이를테면 인도에 세운 한국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임금 체불, 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 등을 자행하여 인도 정부 혹은 개인들이 한국인인 나를 가두거나 욕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베트남에서 한국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이유로 베트남에 여행 간 내가 폭력적인 상황을 겪어야 한다면? 필리핀에 아빠 없는 코피노들이 너무 많아짐에 따라 나에게 관광이나 방문을 제한한다면?
나는 인도에 한국 공장이 있는지도 몰랐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성구매를 하거나 결혼 사기를 치는 ‘일부’ 한국 남성들과는 상종도 하기 싫다. 나는 인도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일을 행한 바 없고,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필리핀에서 성구매를 하거나 결혼 사기를 친 적도 없다.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닌데도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제재를 당한다면, 부당하다 할 것이다. 한국 기업과 정부와 개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그를 이유로 ‘나’를 비롯한 모든 한국인들이 차별과 제재를 받는 것은 철저히 다른 문제라고, 다른 문제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기본적인 입장은 그렇다. 그러하다.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하나…… 그래서 나는 완전히 무관한가? 오롯이 무결한가? 나는 책임이 없다, 죄가 없다! ……그러한가? 그럴 수 있는가? 그럴 수가 있는가? 진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