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일식 여행 ③ 나의 첫 금환 일식
일식을 배운 적은 있는데 본 적은 없다. 일식이나 월식이 있을 거라는 뉴스를 들으면 한번 봐볼까 싶다가도 까먹거나 일껏 챙겨나가도 구름이나 건물 때문에 보지 못했다.
전날까지도 구름이 많아 걱정을 좀 하다가 될 대로 되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걱정해봐야 어쩔 것이야. 이미 여기까지 왔고 걱정한다고 구름이 걷히는 것도 아닌데. 될 대로 되겠지, 케세라세라, 왓에버 윌 비, 윌 비.
일식이 아침 9시부터 시작이고 일식을 볼 포인트가 숙소에서 거리가 있어서 7시쯤 일어나 준비를 했다. 빠르게 빠르게 씻고 후다닥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모자와 일식 관람용 안경(중요!), 페이스 커버, 아침으로 먹을 간식들을 한 짐 챙겨들고 달렸다. 달리는 도로 곳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캠핑 의자를 놓고 테이블을 설치하고 삼각대와 카메라를 세팅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이렇게 아침부터 달리고 있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인간한테 제일 안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생각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 인간 싫은데, 진짜 별론데,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만다.
벚꽃 폈다고 옹기종기 모여들어 사진 찍고 구경하는 거, 단풍 든다고 너도나도 산으로 몰려가는 거, 해 뜬다고 달 예쁘다고 별 보인다고 카메라고 망원경이며 동원해 보려고 하는, 이런 행위들. 매해 피는 꽃이고 매해 드는 단풍이고 매일 뜨고 지는 해고 달이고 별인데 그게 뭐라고, 그거 뭐 대단히 좋고 신기할 게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나만의 벚꽃 순례 코스가 있고 단풍 여행을 가고 해 지고 뜨는 거 보길 좋아하고 달 보면 소원 빌고 별 많이 보이면 괜히 신나고 그런다. 그리고 그러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은 아, 인간 싫은데, 진짜 별론데, 중얼거리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같이 ‘쓸데없는’ 행위들이잖은가. 시간 쓰고 돈 쓰고 기운 쓰는데 돈 주는 것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무용無用한 행위들. 이런 것들에 기꺼이 마음과 몸을 들이는 게 좋다. 그럴 때 살아있다고, 살고 있다고 느낀다. 살아있는 게 비로소 나쁘지 않다. 무용한 일들을 가급적 많이 하며 살고 싶다. 하지 않아도 좋을 일들,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고,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하면서. 내가 짓는 글도 그런 것이면 좋겠다. 쓰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고,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글. 읽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고, 읽어도 안 읽어도 그만인.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달렸다. 일식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왕이면 더 멋진 일식을 보려고 델타까지 왔고 이왕이면 완벽한 금환 일식을 보려고 또 한참을 달려서. 이왕이면, 하고 들이는 마음이 귀한 것이라 어여쁜 것이라 고마워하면서.
마침내 솔뫼가 생각한 포인트에 도착.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우적거리며 일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옆 커다란 차 뒤에는 위 꼭짓점을 들어 올린 듯한 삼각형 모양의 텐트가 있었다. 한 사람이 눕지도 못할 크기와 형태의 텐트란 무엇인가 의아해하는데 솔뫼가 아, 화장실, 이라고 말했다. 엥? 화장실……? 화장실을 여기에? 저렇게? 설마!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금 뜯어보았지만 볼수록 화장실이었다. 한 사람이 눕지는 못하지만 앉을 수는 있는 넓이, 일어서도 머리가 닿지 않을 높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화장실이 아닐 수 없었다. 화장실일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이라면 텐트의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그렇구나, 저것은 화장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비위가 약한 나는 금세 속이 울렁거렸다. 내 상상력, 멈춰. 그만해. 상상력이 풍부한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자꾸 시선을 끄는 텐트를 외면하며 나도 나름의 준비를 했다. 모자를 쓰고 일식 관람용 안경을 쓰고 페이스 커버를 둘렀다. 그러고 팔짱을 끼고 앉았더니 그야말로 서스피셔스suspicious한 아시안이 되었다. 서스피셔스하다는 말은 미스터 제이에게 배운 농담인데 그는 걸핏하면 서스피셔스라는 단어를 썼다. 우리말로 하면 수상쩍다, 의심스럽다는 뜻의 이 단어를 정말 아무데나 다 갖다 붙이는데 그러면 갑자기 뚠뚠뚜루둔, 뚠뚠뚜루둔, 배경 음악이 들리며 흥미진진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코리안과 서스피셔스 코리안. 얼마나 다른가. 그냥 우먼과 서스피셔스 우먼. 또한 다르다.
재미있어서 나도 따라서 아무데나 갖다 붙이고 있는데 나의 모습은 리터럴리, 글자 그대로, 서스피셔스했다. 얼굴을 다 가린 수상쩍은 아시안 여성. 솔뫼가 재밌다고 차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 사진이 정말 웃겨서 공유하고 싶은데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포기한다. 어차피 다 가려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하여튼 내가 봐도 되게 웃겼고, 그 웃긴 착장으로 아침을 먹었다. 수상쩍은 아시안도 아침은 먹어야 하니까.
아침은 사과와 맛밤과 아치스 국립 공원에 갈 때 활약했던 바게트 조각과 살라미, 치즈가 담긴 런치팩. 사과를 애피타이저 삼아 먼저 먹고 서양 삼합 조합에 견과류와 맛밤을 곁들여 먹었다. 서양 삼합만 먹어도 충분히 든든하지만 여기에 견과류와 맛밤을 더하면 무적이다. 고소하고 기름지고 달달한 것들을 한꺼번에 오독오독 씹으면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을 가본 적은 없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나는 먹는 게 느려서, 아니, 먹는 것도 느려서 아침을 먹는 중에 일식이 시작되었다. 오, 일식! 입으로는 과일과 견과류를 부지런히 씹으면서 눈으로는 조금씩 사라지는 해를 보았다. 까만 그림자가 조금씩 조금씩 해를 잡아먹었다. 일식을 두고 어느 나라에선 해가 잡아먹힌다는 표현을 쓴다는데 적확했다. 그냥 가려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가장자리부터 뜯어먹듯이, 잘라내듯이 검어졌다. 해가 조금씩 가장자리부터 뜯어 먹히고 잘리고 있었다. 와, 신기해!
21세기의 내가 봐도 신기한데, 일식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 과학적인 원리를 다 알고 봐도 이렇게나 기기묘묘한데, 옛날 사람들은 어땠을까.
일식이나 월식에 관한 옛 기록을 보면 과거의 사람들이 하늘의 일을 얼마나 경외하였는지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일식에 관한 기록만 1천여 건이 넘는다. 비유로 쓰인 경우도 있지만(임금께서 하는 바는 일식과 월식과 같아서 어쩌고, 군자의 과오는 일식과 같고 어쩌고 등등) 일식이 일어났다는 기록도 많다. 실록에 적어 남길 만큼 큰 사건이었던 것이다.
기록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일식이 있으니 임금이 소복 차림으로 근정전 영외의 섬돌에 나아가 각사의 당상관, 낭관들을 거느리고 악부도 벌여 놓고 연주는 시키지 않은 채 기도를 올렸다. 다시 해가 나오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건 세종 대 기록.
“일식이 있으므로 임금이 소복을 입고 인정전 월대 위에 나아가 일식을 구救하였다. 시신侍臣(가까운 신하들을 뜻한다)이 시위하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백관들도 또한 소복을 입고 조방에 모여 일식을 구하니 해가 다시 빛이 났다. 임금이 섬돌로 내려와서 해를 향하여 네 번 절하였다.”
참으로 번잡한 의식이 아닐 수 없다. 한발짝만 떼어도 궁이 들썩거리는 주상 전하께서 굳이 소복을 차려 입고 바쁜 신하들 끌고 나와 기도를 하고 절을 올렸다. 손 하나 까딱 않고 선 전하의 옷을 갈아입히느라 낑낑댔을 궁녀들, 공무에 치인 대신들의 꿍얼거리는 소리가 선하게 그려진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해는 다시 나올 건데. 알면서도 이런 걸 했다. 태종이 태종 13년, 그러니까 1413년에 간소하게 하라고 말했다. 경건히 하되 미리 나와 섰지 말고 서운관에서 정한 시각이 되면 나오라고 했다. 대놓고 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예를 차릴 필요는 없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당장 아들인 세종부터가 말을 안 들었다. 신하들을 불러놓고 이걸 하네 마네 논의하면서도 기어코 신하들을 불러내 기도를 했다. 후대 왕들도 따라서 ‘그렇게까지’들 했다.
일식이 그만큼 큰 재앙으로 여겨진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모신 조선에서 일식은 “황제보다 높은 하늘의 변고”였다. “해는 모든 양陽의 으뜸이니 임금의 상징이다. 이제 이지러졌으니 큰 변고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일식과 월식이 으레 나타나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큰 변고”라는 말들이 계속 등장한다. 역학曆學이 상당히 발달하여 일식이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게 되어서도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일식이 일어날 때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아야 할 때 일어나면 흉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왕의 실정을 책하는 빌미로 쓰이기도 했다. 연산군 대 예문관 신료였던 강덕유가 이런 상소를 올렸다.
“그윽이 살펴보건대, 근년에 재앙과 변괴가 자주 나타나 지진이 일고 햇무리가 있으며 겨울에 뇌성이 나고 여름에 눈이 오며, 흰 기운이 하늘에 가로지르고 금성이 낮에 보이며 변방 백성들이 염병에 걸려 거의 다 죽어가니, 재앙과 변괴의 일어남이 비록 춘추 때의 쇠퇴한 세상일지라도 오늘 같이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원인이 없이 그렇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아직도 두려워하실 줄을 모르고 옛날에도 있었다고 하여 별로 몸을 근신하고 행동을 반성하는 마음이 없으시니 신 등이 통분한 마음 이길 수 없습니다.
옛날 주周나라의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이 정사를 잘못하자, 일식과 월식이 드러나고 산과 골짜기가 위치를 바꾸며 비, 눈, 뇌성, 번개가 순서 없이 서로 겹쳤는데 이런 후로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졌고…… 옛적부터 재앙의 까닭 없이 일어나지 않음이 이와 같았습니다. 지금 국가가 비록 평온무사하다 하나 작상이 남발되고 형벌이 타당을 잃었으며…… 이래서 나랏일은 날로 잘못되어가게 되고 하늘의 꾸지람이 겹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폭군 치하 예문관 신료답게 유려한 표현으로 둘러 둘러 말했으나 행간을 포함해 요약하자면 너 지금 진짜 잘못하고 있어, 지금 일어나는 재앙과 변괴가 다 너 때문인 거 알아, 몰라? 내가 속이 터진다 터져, 제발 정신 좀 차려! 쯤이 될 것이다. 물론 연산군은 역사에 길이 남을 폭군답게 신료의 간언 따위 다 씹어버렸고 이후 그는…… 이하 생략하겠다.
검은 달그림자가 해를 가리고 가려 정중앙에 이를 즈음에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외치기 시작했다. 10, 9, 8…… 3, 2, 1! 검은 달이 마침내 태양 정가운데 들어앉아 주홍빛 고리, 이른바 불의 고리ring of fire를 만들었다. 완벽한 금환 일식이었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서로 포옹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솔뫼도 태양 사진을 찍으려 시도했지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주홍빛 고리를 바라보았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무얼 보고 있나 싶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달까? 영화나 TV를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 현실감 없는 광경들을 적잖이 보았는데도 금환 일식은 또 다르게 낯설었다. 과거의 이들이 두려워할 만했다. 해가 저렇게 된다고? 검어진다고? 이렇게 어두워진다고? 과연 기이했다.
그리고 어쩌면 일식은 여전히 변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하늘이 내리는 경고, 준엄한 꾸짖음. 저 일식을 핑계로 내가 당신 때문에 속이 속이 아니라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들이 하나, 둘…… 아, 너무 많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역시 인간은 싫다. 진짜 별로다. 하고 싶은 말이야말로 정말 이하 생략해야 할 것 같다. 비록 덤으로 살고 있으나 최대한 조용히 무탈히 살고 싶다. 그 말들을 꿀떡꿀떡 베어먹는 사이 달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다시, 해가 나올 것이었다.
©타이틀 헤드 이미지는 델타칼리지에서. www.delta.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