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013 #스콧_피츠제럴드

by 이채준


작성 : 2021년 1월 30일


계기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이 책이 직접적으로 언급이 된다. 주인공 와타나베와 나가사와가 친해진 것도 <위대한 개츠비> 때문이었다.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한다. 나가사와가 롤모델인 나에게 이 책을 3번은 아니더라도 한 번은 읽은 책이었다. 하루키의 화려한 필체를 닮고 싶은 나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


느낀 점


<백년의 고독>이라는 엄청난 함정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읽은 첫 책이다. 짧고도 알찬 책이었다. 몰입해서 아주 빠르게 읽었다. 백년의 고독을 읽은 뒤에 읽는 책은 그 어떤 책이라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주된 감정은 역겨움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상당 수가 내로남불에 이기적이다. 특히 톰과 데이지가 제일 역겨웠다. 톰은 머틀이라는 이름의 정부와 내통하고 있으면서 데이지가 개츠비와 만나는 것에는 배신감을 느낀다. 또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 톰이 그녀를 잡기 위해 던진 '가끔 바람을 피우더라도 항상 너에게 돌아왔잖아'란 식의 변명은 정말 역겨웠다.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간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하고 부잣집 아들 톰과 결혼한 데이지도 역겨웠다.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 개츠비에게 같이 새로운 삶을 꾸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그렇게 하기로 약속까지 했음에도 톰을 버리지 못하는 그녀의 우유부단함에도 역겨움을 느꼈다. 개츠비를 사랑하지만 톰도 사랑하고 있다는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는 보일 수 있는 인간의 가장 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개츠비가 죽고 나서도 한 마디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그들은 정말 역겨움 그 자체였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에게 연민을 느꼈다. 개츠비에게는 댄 코디에게 배운신사교육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사랑하는 데이지와 경제적으로 급이 맞지 않았던 그는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마이어 울프심을 통해 개츠비는 금주령으로 술을 팔지 못 했던 미국에서 밀주업을 하며 부를 축적한다. 그런 그는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데이지를 되찾는다. 둘은 변하지 않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아이까지 낳은 유부녀 데이지에게 그는 현실 도피성 장난감일 뿐이었다. 개츠비는 끝까지 데이지에게 진심이었고 데이지를 위해 살인 혐의까지 덮어쓰려고 한다. 그는 결국 범인을 그로 오해하고 있던 윌슨 씨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런 그의 장례식은 그의 화려했던 파티에 비해 초라하게 치러진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개츠비의 아버지는 닉에게 어린 개츠비가 적은 자필들을 보여준다. 어린 개츠비의 글에서 느껴지는 야망은 그의 허망한 결말과 대조된다. 흑과 백의 대조 같은 후반부의 장면들은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또 그 외의 인물들을 더욱 증오하도록 만든다.


이 책을 읽자마자 나는 유명한 같은 이름의 영화를 봤다. 정말 책의 분위기와 내용을 잘 살린 영화라고 생각했다. 화려한 영상과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책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다른 감동을 주었다. 또 책과는 다르게 연출한 장면들이 인물들의 심리를 더 잘 표현했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책 보다 논리적이고 유기적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 특히 책을 읽을 때는 개츠비가 과거에 미련을 못 버리는 바보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는데 영화에서는 되게 낭만적으로 보였다. 또 장면들에 음악이 들어가니 더욱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적어도 나에겐 음악이 그 어떤 매체보다 감동을 크게 주는 것 같다. 소품 같은 디테일들도 영화를 더 재미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닥터 T. J. 애클버그 광고판이 어떻게 생겼을지 되게 궁금했는데 영화에서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아 좋았다.


이 책은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도성장을 이룬 미국의 호화로운 모습을 잘 보여준다. 호화로운 삶과 반대로 물질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이기적으로 변한 사람들의 모습도 잘 보여준다. 비평 중에 이 책은 신이 나오지 않는 몇 안 되는 고전 중 하나라는 내용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때까지 내가 읽은 많은 고전들에는 신과 성경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는데 이 책이 처음으로 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무신론이 이 책에 잘 포착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일당백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영상을 봤다. 일당백에서는 이 책을 아메리칸 드림의 모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말 그대로 낭만적인 꿈인 것이다. 꿈은 꿈일 뿐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미국에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들의 막강한 부를 이용해 새로운 지배층이 되고자, 귀족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기존의 지배층과 귀족은 기어 올라오려고 하는 벼락부자들의 사다리를 발로 차 버린다. 이것을 듣고 나니 책의 내용이 새롭게 느껴졌다. 올드머니인 뷰캐넌의 세계에 섞여 들어갈 수 없는 뉴머니인 개츠비의 안타까운 모습이 보였다. 에티켓은 매너가 아니라 귀족들이 자본가들을 멸시,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뷰캐넌이 에티켓으로 좀 더 놀다 가라는 말한다. 닉과 베이커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사양하지만 개츠비 혼자서 좋다고 신나한다. 유럽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미국은 멸시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도 "부자는 우리들과 다르다"라고 얘기를 했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불평등을 작가가 집어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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