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015 #서머싯_몸

by 이채준


작성 : 2021년 2월 20일


계기


이 책을 읽기 전에 <오만과 편견>을 읽고 있었다. 충분히 재미는 있는 책이었지만 너무 두꺼웠다. 읽어 볼만 한 얇은 책을 찾아보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오만과 편견이 두껍다는 핑계를 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이 천재에 관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공군 커뮤니티에서 봤었다. 고갱의 삶을 모티프로 집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과연 천재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 궁금했다.


느낀 점


이 책은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결혼한 지 17년이나 된 증권사 중개인이다. 어느 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가족과 직장을 다 때려치우고 파리로 그림을 그리러 떠난다. 야만적인 행동을 일삼는 그는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는 그의 그림에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그의 방황은 그가 타히티로 가면서 끝이 난다. 타히티는 그에게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17살 밖에 안 되는 소녀와 결혼도 한다. 나병에 걸리고 시력도 잃지만 그는 그가 만족하는 그림을 완성한 뒤 죽는다.


나는 스트릭랜드가 몰인정하고 이기적이며 반인륜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타히티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순수하고 예술에 그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몸이 썩어 들어가고 눈이 멀어가면서도 미술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그가 혐오스러웠지만 끝에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 몰랐다. - p.56


저속함과 고상함. 나는 이 상반적이고 모순적인 두 개의 개념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모순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고 오히려 모순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공존하고 있다. 그 두 가지가 이루는 격렬한 대비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고상한 척하는 저속한, 모순적인 사람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릭랜드는 저속함과 고상함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모순적이라는 점에서 일관적인 사람이었다. 모순적인 사람의 삶을 따라가면서 화도 내고 눈물도 흘려보았다. 그 과정에서 모순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모순됐더라도 일관적인 사람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직한 작가라면, 특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기보다 그 행위의 동기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다. (중략) 작가는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데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다. -p.198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하나가 있다. 바로 사람들에 대한 이해다. 나는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사람이 비정상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본 사람이 실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본 사람은 내 가치관에 맞게 재단된 사람인 것이다. 내 마음대로 잘라 버린 부분에 그의 논리와 가치관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내가 입맛에 맞게 조각내서 흡수하는 게 나의 입장에서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놓치게 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견 없이 그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내 눈앞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당황하기보다 이해하고 공감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기벽을 가진 기인을 만났다. 그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한 편으로는 나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_굴레에서 도 꼭 읽어 보고 싶다. 또 DJ라는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었다.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릴 수 있는 사람의 대담함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들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 p.9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는 사람을 고결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든다. -p.90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이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신령한 힘을 어쩌다 한번 체험하고선 그것을 늘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돌팔이 의사처럼,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남용함으로써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 p.192


내가 브뤼겔에게서 받은 인상은, 그가 다른 매체로 표현하면 더 나았을 감정을 자신의 매체로 표현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스트릭랜드가 그에게 공감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을 어렴풋이 의식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두 사람은 모두가 문학에 더 적합한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던 것 같다. - p.224


정말 아브라함은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거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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