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이날도 새벽에 눈을 떴다.
10시쯤 잠들어서 새벽에 홀로 사색을 하는 게 루틴이 됐다.
낮에 잠깐 낮잠을 잔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루틴을 즐겼다.
별과 놀아준 후 9시에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그리고 새벽에 깨서 깨작깨작 이런저런 걸 한다.
해가 뜨는 순간을 보는 게 좋다.
하루가 시작된다는 느낌.
시간은 새벽 3시경.
우선 베란다로 나가 나짱 거리를 쳐다봤다.
조용하다.
크리스마스 열기는 어느새 식은 느낌.
그리고 침대에 누워 폰으로 전날 후기를 쓴다.
이것도 쓰다 보니 꽤 재미있다.
누군가 내 글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점도 고맙다.
좀 더 재미있게, 잘 쓰고 싶다.
고수 등급도 멀지 않아 보인다.
글은 채웠고, 댓글이 좀 남았다.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리의별을 마저 읽었다.
강태식 작가는 이번 책에서 꽤 달라졌다.
굿바이동물원의 유머러스함은 그대로지만,
좀 더 넓어지고 세련 돼졌다.
특히 도리스 브라운이 혼자 말로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은 닮고 싶은 곳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읽었다.
도리스브라운? 알다마다...
로 시작되는 챕터.
책을 읽다가 다시 폰을 들었다.
엠엘비파크에 접속해 야구 소식을 봤다.
멀리 떨어져 있었더니 먼 세상의 이야기 같다.
각종 잡담을 늘어놓는 불펜을 보니 한국 상황이 그려졌다.
한국은 꽤 춥구나.
이곳과는 아주 먼 곳 같다.
나도 한국에 있었다면 추위에 떨면서 출근을 했겠지.
난 기본적으로 추위가 싫다.
더운 건 낫다.
하지만 추위는 싫다.
몸이 둔해지는 느낌이 싫다.
특히 야구가 없다는 게 가장.
반면 엠은 더위에 약하다.
이런 점도 서로 다른 점이다.
별을 낫기 전엔 몰랐던 부분이다.
아이를 낳고 엠은 부쩍 더위에 약해졌다.
바깥이 밝아와서 다시 베란다로 나가 밖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이날은 오전 내내 숙소에 있을 예정이어서 좀 느긋하게 조식을 먹었다.
우선 웨이크업 커피 한잔.
완전 중독돼 버렸다.
어제 고트 커피에서 아쉬웠던 걸 풀려고 두 잔을 마셨다.
호텔 조식도 5일째가 되다 보니 시큰둥해졌다.
사람은 싫증을 잘 내는 존재인가 보다.
별을 데리고 어제의 그 키즈룸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수영장으로 올라갔다.
앞에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바람이 상당히 불었다.
그런데 그 바람을 뚫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수건을 두르고 오드득 떨고 있었다.
인도에서 왔으면 추위에 더 약하지 않을까.
반면 러시안들은 이 정도 바람엔 끄떡없을지 모른다.
별과 어제의 그 얕은 수영장에서 놀이를 했다.
어제 놀이가 재미있었는지 또다시 섬에 갇힌 공주가 됐다.
난 공주를 위협하는 바닷속 괴물이 됐다가, 다시 구해주는 왕자가 되기도 했다.
왕자가 되면 별과 마음껏 허그를 할 수 있다.
아이와 이런 공주님 놀이를 하는 시간이 참 신기하다.
혼자 자란 나는 기본적으로 공주니, 왕자니 하는 동화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
올림픽이라던지, 야구라던지, 혼자 그런 세계를 공상하면서 보냈다.
별도 언젠간 자신의 진짜 왕자를 찾아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서글퍼진다.
어제에 이어 한번 더 사우나를 갔다.
전날의 그 스탭이 멍하니 있다가 나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이날도 손님은 나 혼자.
홀로 이국의 사우나에 있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어떤 영화에서 사우나 격투신을 본 기억이 났다.
서로 옷을 벗은 남자 둘이 죽이기 위해 싸운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지만,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간단히 사우나를 마치고 방으로 왔다.
12시까지 쭉 늘어져있다가 체크아웃을 하기로 했다.
별은 디즈니 채널에 빠져 있었다.
오늘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참파아일랜드로 간다.
수영은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
자연스럽게 1층 피자샵으로 의견이 모였다.
가지, 뭐. 오늘은 3 피자를 먹겠다는 목표도 있다.
12시에 퇴실을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퇴실하면서 100달러를 환전했다.
이곳 환율이 가장 좋은 것 같으니.
그리고 다시 피자샵으로.
오늘은 3 피자. 난 바질 파스타에 아사이 드래프트.
엠과 별은 에이드를 시켰다.
피자는 확실히 5 피자가 가장 좋았다.
숫자는 들어가는 치즈의 가짓수를 의미한다.
많을수록 맛있는 건 당연하겠지.
별이 슈렉 파스타라고 부르는 바질 파스타에도 완전히 반했다.
또 오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한국으로 가기 전에 질리도록 먹고 싶은 곳이다.
바로 그랩카를 불러 참파 아일랜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