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에일의 경고 – 다음 금요일을 향한 갈망
- mini prolog -
반복되는 금요일은 고통이면서도 놓지 못한 유일한 길이었다.
서점은 또다시 나를 불러, 미완의 감정을 되돌리고 있다.
나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그저 내 의지에 의해서 되감기고 있었을 뿐이다.
매번 같은 장면, 같은 공간, 같은 고통 위에서 나는 또다시 ‘재생’을 눌렀다.
금요일은 흘러온 하루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환영의 순환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별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 서점의 문은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그 문을 존재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익숙한 서점의 문이 오늘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손끝으로 문고리를 쥐는 순간, 이제는 내가 여는 문이 아니라, 문이 나를 불러들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서늘한 종이 냄새가 밀려왔다.
그 냄새 속엔 오래된 대화의 잔향과, 시간이 말라붙은 감정의 먼지가 섞여 있었다.
나는 처음 때처럼 긴장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에일은 언제나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눈빛이 조금 달라 보였다.
무언가 오래된 체념이 깃든 듯,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오늘도 당신은 그 시간의 문을 열려고 하는군요.”
그의 목소리는 바닥 가까이에서 낮게 깔려 나왔다.
“이번엔 또 어떤 이유인가요? 후회? 혹은… 여전히 끝내고 싶지 않은 사랑?”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한참을 망설였다.
말하고 싶었던 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사실 이젠 모르겠어요. 그냥… 멈출 수가 없어요.”
에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멀리, 창가 너머의 어둠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나 대신 내 기억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그럴 수도 있죠. 멈추지 못하는 아픔은, 늘 같은 곳으로 당신을 데려오니까요.”
그는 손끝으로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
탁.
짧은 울림이 공기 속을 갈랐다.
책장이 스스로 흔들리며, 한 권의 낡은 책이 밀려 나왔다.
[이름 없는 겨울의 끝자락]
그 표지는 오래된 눈처럼 희미했고, 제목은 거의 지워져 있었다.
“오늘은 이건가요?”
내가 묻자, 에일은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여태껏 모든 책들은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모든 책들이 당신의 선택이었죠.”
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손에 들었다.
표지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그 차가움이 곧 내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에일, 당신은 정말 내가 멈추길 바라는 건가요?”
그는 대답 대신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엔 냉소도, 연민도, 약간의 슬픔도 섞여 있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요. 멈추지 못한다는 건, 아직 끝내지 못한 마음이 있다는 걸.”
그 말은 경고이자 위로였다.
나는 천천히 책을 펼쳤다.
서점의 불빛이 흔들렸고, 종이 냄새 사이로 오래된 바람이 스며들었다.
눈앞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그곳이었다.
그녀의 뒷모습, 겨울의 거리,
그리고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 발걸음.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고통이라면, 차라리 이 안에 머물자.
그녀가 사라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선명해지는 시간이니까.’
눈을 감았다.
시간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점의 불빛이 다시 켜졌을 때, 나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덮인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짧은 문장이 적힌 쪽지가 있었다.
글자의 기울기가 어딘가 익숙했다.
한때 겨울 편지에서 보았던 곡선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했다.
“기억은 고통이 멈추는 곳이 아니라, 고통이 당신을 잊지 않는 장소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고, 쪽지를 접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서점의 문을 나서자, 바깥 공기는 처음 왔던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은,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다시 같은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이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내 마음은 이미 다음 금요일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