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겨울. 멈춰 있는 나, 흘러가는 그녀
책상 위에 놓인 편지들. 더 이상 새로운 편지는 쌓이지 않았다.
한때는 매일같이 채워지던 그 자리가, 이젠 고요히 멈춰 있었다.
몇 번의 계절과 같이 반복된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녀와 나의 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편지 대신 받은 엽서에는 예전 같지 않은 짧은 문장들로 채워졌다.
“잘 지내고 있지?”
“요즘은 바쁘네.”
“건강하게 지내.”
짧은 문장이었지만, 나는 그 글씨 속에서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느끼려 했다.
엽서를 읽을 때마다 잊히지 않았다는 작은 안도와, 예전처럼 길게 나눌 수 없다는 아쉬움이 함께 스며왔다.
나는 여전히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워 그녀에게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글은 점점 짧아져, 몇 줄의 엽서로만 이어지곤 했다.
그 변화는 겨울밤의 공기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내 마음에 쓸쓸한 여운을 남겼다.
그녀의 짧은 연락은 변함없이 다정했지만, 왠지 그 다정함이 더 슬펐다.
“넌 늘 착하고 좋은 동생이야.”
그 한마디가 내 안에서 오래 메아리쳤다.
나는 더 이상 동생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다정함조차 아프게 다가왔다.
겨울밤, 창문에는 성에가 서리고, 바람은 뺨을 차갑게 스쳤다.
나는 펜을 들어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다.
“누나는 그 여름밤을 기억해요?
파도와 별빛 속에서 함께 웃던 그 순간을요.
나는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어요.
시간은 흘렀지만, 내 마음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누나는 이제 멀리 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의 바닷바람 속에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종이 위에 모든 말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끝내 적고 말았다.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며, 어쩌면 답장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 남았다.
그 편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엽서조차 더 이상 오지 않았고, 기다림은 차츰 공허한 습관으로 바뀌어 갔다.
창밖의 눈송이는 쌓였다가 이내 녹아 사라졌고, 겨울은 늘 너무나 춥고 길기만 했다.
우리의 시간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알 수 없는 틈이 있었다.
나는 항상 멈춰 있었고,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또 흐른 뒤, 그녀는 스물셋이 되어 있었고, 나는 스물둘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