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여름. 재회, 그리고 옛감정으로의 회귀
시간은 순간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연애도 몇 번 해봤다.
그런데… 그 어떤 관계도 내 안의 빈틈을 채우지 못했다.
어느 여름의 끝자락,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문득, 그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기억 속의 그녀는 여전히 따뜻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지금도 그대로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며칠을 망설이다,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교회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누나, 어떻게 지내요?”
“어? 너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회사 다니느라 바쁘겠지. 연락 한 번 해볼래?”
순간, 망설임이 밀려왔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 들고 있었다.
손에 쥔 번호를 바라보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될까?’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누나, 잘 지내죠? 나 기억날까?”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혹시 답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면 번호가 바뀌었을까?
그러나 며칠 뒤, 휴대폰이 울렸다.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그녀였다. 여전히 따뜻한 목소리. 그런데… 어딘가 낯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다가, 결국 오래 품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누나, 내가 예전에 편지 보낸 거 기억해요?”
“…응. 기억해.”
“답장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미안해.”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며칠 뒤, 나는 그녀에게서 온 편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오래 전, 수련회가 끝난 뒤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받았던 편지를 열던 순간처럼.
“네 편지를 받았을 때, 많이 놀랐어.
사실 나는 한동안 일본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거든.
바쁘게 살다 보니 이제야 답장을 하게 됐네. 누나가 너무 무심했지?”
글씨에는 미안함과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난 널 잊지 않았어.
네가 먼저 이렇게 챙겨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더 오랜 시간 너를 그리워만 했을 거야.”
나는 글씨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그녀의 마음을 더듬었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잊지 않았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나는 이제 완전히 어른이 되었고, 너도 네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겠지.”
그녀는 부드럽게 선을 긋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이렇게 연락해줘서 기뻐.
언제 한번 보자. 솔직히, 누나도 네가 얼마나 변했을지 많이 궁금해.”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녀도 흔들린 걸까, 아니면 그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었을까.
나는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그저,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