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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Ⅶ. 가을. 그녀를 다시 만난 날

by 이서

가을의 바람이 선선히 불던 저녁,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는 오래 전 그날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니,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차분히 묶은 머리, 단정한 코트, 그리고 외적으로 풍겨나는 성숙함.

그 때 그녀의 그 풋풋함은 사라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그녀는 늘 한결 같았다.


“정말... 오랜만이네.”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짧은 말이 오가고,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눈을 마주쳤다가 곧 피하며, 우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처음엔 말이 자주 끊겼고,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러다 그녀가 먼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기억나? 바닷가에서 별 보던 거.”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굳어 있던 시간이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 향이 퍼지는 공간 속에서 대화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가끔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녀도 잠시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갑자기 연락할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요. 그냥…"


그냥… 그녀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오래전과 똑같이 웃었고,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카페를 나와 조용한 거리로 나섰을 때였다. 그 순간, 그녀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내 품으로 쏟아지듯 안겼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그녀의 체온이 온전히 느껴졌다. 바람에 섞여 들어오는 숨결., 어깨를 타고 전해지는 그녀의 흔들림.

그 순간은 오래 전 여름밤, 별빛 아래 나란히 앉아 있던 기억과 겹쳐졌다.


"누나, 괜찮아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는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품에서 천천히 물러나며, 그녀를 안고 있는 내 팔을 살며시 밀쳐냈다.

이윽고 그녀는 작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고마워. 넌 여전히 착하네."


그녀의 말은 따뜻했지만 내 마음에는 오래 남았다.

나는 더 이상 ‘착한 동생’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경계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을까? 방금 전의 그 일로 나에겐 그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걸.


"이제 가야겠네."

"네, 누나.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존댓말을 했다. 그녀가 원하면, 나는 여전히 '좋은 동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나는 조금 더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도 걸음을 떼기 전에 한 번 더 망설였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게로 돌아서서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


그리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 미세한 숨결, 나를 바라보던 흔들리는 눈빛.

그녀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아니면, 나만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곧 다가올 순간을 짐작조차 못한 채, 그녀와의 다음 만남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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