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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Apr 13. 2016

본질을 짚는 질문

즉독즉작5, <지금 당신의 차례가 온다면> 50p 을 읽고

베스트셀러 소설가 스티븐 킹이 강연할 때 일이다. 짧은 강연을 하고 질문 있는지 물었다.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책을 쓰실 때 어떤 연필을 사용하시나요?' 마치 그가 쓰는 연필을 알면 그와 같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듯한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조금 이해한다. 10여 년 전 내가 중학교 다닐 무렵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반마다 개별 토너먼트가 이뤄졌고 반별 대항전 더 나아가 학교 대항전까지 있었다. 나는 꽤 열성 유저였다.


야구를 좋아하거나 농구를 좋아한다는 말은 응원하는 '팀'과 '선수'가 있다는 말이 담겼다고 봐도 거의 틀리지 않듯 이 게임도 그렇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와 팀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박정석' 선수였다. 그의 경기를 매번 봤으며 다시 돌려 보는 건 일상이었다. 그가 게임을 할 때 쓰는 마우스와 키보드까지 샀었다.


우린 흡사 대회처럼 피시방에 가서 토너먼트를 했다. 다들 가방을 메고 오는데 그 안엔 각자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다.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보면 선수들이 자기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져와 세팅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선수는 세팅하는 데 30분 넘게 들이기도 한다. 그만큼 사전 세팅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그들을 보고 자란 우리도 세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금 보면 피시방 가서 게임하는데 그렇게 챙겨 오는 게 다소 웃길지 모르겠다. 그때 우린 진지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됐고 계속 스타크래프트를 하긴 했지만 중학교 시절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어떤 세팅인지 그렇게 연연하지 않게 됐다. 전에 산 마우스와 키보드도 많이 써서 바꿨다. 그쯤에 알게 된 선수의 '정보'가 있었다. 프로게이머의 연습량.


공부하기 싫어하고 게임 좋아하는 나와 친구들이 보기에 프로게이머는 굉장히 좋은 직업이었다. 재밌는 게임을 종일 할 수 있다니. 고등학교에 와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게임을 하루 최소 10시간을 한다. 우린 공부도 그만큼 하지 않는데. 최상위 성적의 선수들은 16시간 정도도 한다고 했다. 밥 먹고 자고 씻는 시간 빼면 게임만 한 것이다. 내가 그쯤 응원했던 선수는 실력과 연습량 모두 최고 선수였는데 작은 손을 계속 키보드를 누르기 위해 계속 벌리다 찢어져 결국 굳은살이 배겼다.


전 프로게이머 이영호 선수의 손, 찢어진 자리에 굳은 살이 생겼다


선수들의 연습량을 알고 나선 그 직업에 갖고 있던 가벼운 생각은 사라졌다. '프로'라는 이름엔 이미 나이를 떠나 이름에 걸맞은 '자세'가 들어 있었다.


다시 스티븐 킹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렇게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에겐 어떤 질문을 했어야 했을까? '좋은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얻으십니까?'는 어떨까? 이 또한 그리 좋지 않다.


보잘것없는 아이디어들은 전부 어디서 얻으십니까?


위 책의 저자 세스 고딘은 말한다. "보잘것없는 아이디어들은 전부 어디서 얻으십니까?"라고 물으라고. 보잘것없는 아이디어가 많으면 좋은 아이디어는 저절로 생긴다. 보잘것없든 대단하든 아이디어는 시간이 흐를 때까지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들어진 후에 골라내면 된다.


많은 보잘것없는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를 만든다. 다른 말로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건 간단하다. 가장 많이 실패하면 된다. 남보다 더 많이 실패하면 결국엔 도달한다. 계속 실패하려면 실패를 지속할 만큼 버틸 힘이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실패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원출처를 못 찾.. 아시면 알려주시길


아이디어를 만드는 창작자에겐 보잘것없는 아이디어의 출처를, 농구와 게임을 하는 선수에겐 얼마나 많이 실패하는지를 묻는 것이 그들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보잘것없는 수많은 실패는 영양분 많고 단단하며 적당히 물을 머금은 양질의 토양이 되어 그들의 성공을 싹 틔우고 자라나게 하며 지탱하게 한다.


성공하거나 뛰어난 결과를 만든 이에게 '비결'이 궁금하다면 성공하게 만든 요인보다 실패 과정을 물어보자. 성공은 과정의 '꽃'이지만 실패들은 과정이란 나무가 자라나게 한 '토양'이니깐. 그게 본질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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