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곽재구의 포구 기행> 중'
별 볼 일 없는 풍경, 그것을 주목하는 힘. 그게 삶의 지혜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자, 시인의 재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에요.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저 중.
이 책을 읽으며 삶이 바뀐 게 있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속도다. LTE 시대에 맞게 무얼 해도 서둘러하려 했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틀어놓고 허겁지겁 먹었다. 내가 무엇을 먹는 것보다 먹는 시간에 뭐라도 보는 게 중요해 보였다. 나는 지하철에 타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데에도 강박 아닌 강박이 생겼다. 한 달에 10권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 위로 눈이 미끄러지는 걸 느낀다. 어물쩡 넘어가는 문장들이 있다. 그래도 그래도 읽었다고 스스로 공인하며 넘어간다.
천천히 한 번 보라는 저자의 제안에 속도를 늦췄다.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꼬박꼬박 씹어먹듯 읽었다. 한 문장, 한 단어, 한 공란을 읽었다. 저자의 마음을 느끼기도 하며 지혜가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읽는 속도는 느려졌는데 흡수되는 속도는 빨라졌다. 많이 씹고 삼켜야 소화가 잘 된다고 하던가.
마음 챙김을 하기 위해 자기 전에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질 때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후다닥 하고 말았다. 기도도 마찬가지. 그렇게 할 거면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을 텐데. 느리게 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건데 시도에만 의미를 뒀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시간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 그 순간을 누려 보았다. 마음이 가라앉고 떠다니는 생각들이 소복이 쌓였다. 혼탁한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고요해지면서 맑아지듯 내 정신도 그런 모습이지 싶었다. 느림의 미학은 빠른 속도가 답이 아닌 경우도 충분히 많음을 알려주었다.
다른 하나 바뀐 건 관찰이다. 나는 원래 빨리 걷는다. 지하철 환승하는 거리에서 나보다 빠른 사람은 뛰는 사람 말고 본 적이 없다. 정말 일부러 빨리 걷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도 없다. 천천히 걷는 걸 처음 배운 건 유럽여행에서였다. 다시 못 올 이 순간을 후다닥 걸어가며 지나칠 수 없어 한 걸음을 음미하듯 걸었다. 한국에서도 천천히 걸었지만 이내 금방 돌아와서 놀라기도 했다.
책을 읽고 다시 천천히 걸어 보기로 하니 보이는 게 많다. 이웃들의 시덥잖지만 웃음 가득한 대화, 외식 갔다 돌아오며 한껏 신난 가족들, 선선한 날씨에 놀이터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집에 가기 위해 가게 마감하는 사장님, 슈퍼에서 양 손 한 가득 먹을 것을 봉투에 담은 손길, 누군가의 비틀거림, 몇몇의 고성, 어떤 이의 슬픔까지.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도. 다양한 구름의 행렬과 퇴근할 때 떠있던 해가 어느새 퇴근하면 사라지는 것, 달이 좌우로 왔다가 언젠간 기분 좋을 때도. 출근길에 서부 카우보이가 타 있는 조각상이 전봇대에 놓였었다. 봉투에 담아 버린 게 아니라 3주 동안 아무도 안 치워줘서 누가 치울까 했는데 4주가 되니 그 전봇대 옆 건물을 헐면서 자연스레 치워지기까지도.
아, 그제는 양재역에 원래 나가는 출구가 아닌 다른 출구로 나가면서 벽에 있는 그림을 가만히 서서 보는 할아버지의 집중력을 느꼈고,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가 환승하느라 바쁜 고속터미널 9호선 길에 설치된 예술품을 보는 이들의 여유를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모른다. 그냥 지나가도 될 일들이다. 책을 읽은 후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바라보는 여유로움, 그냥 지나가도 될 순간들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을 배웠다. 어떤 건 꼭 따뜻하진 않더라도 무언가를 보고 잠시라도 머물며 느낄 수 있다면 오감으로 느낄 세상을 더 풍성히 누리는 게 아닐까.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곽재구
느림이 주는 매력은 여유로움이다. 느리게 걸으며 '나'를 관찰하는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나 외에'를 사색하는 관찰의 시간을 갖거나. 책을 볼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잠시 숨을 고를 때도 느림이 주는 효과는 동일하다. 그리고 이 느림의 순간은 찰나에 집중하게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사라지는 찰나 하나를 붙잡아 보는 힘을 준다. 모두가 그 순간을 언어로 풀 순 없지만, 주목하게 되는 찰나가 바로 시적인 순간일 테다.
그 순간순간이 모인다면 느림이 빠름이 줄 수 없는 속도를 주듯, 찰나는 자신의 덩치보다 삶에 훨씬 큰 풍족함을 줄 것이다.
생각건대 일상을 여행할 때 천천히 걸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면, 여행할 때 일상이 그랬듯 흠뻑 누리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딜 가도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