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1일 차
돈 내고 가는 독서모임 트레바리는 2년 전에 알았다. 독서모임을 5년 넘게 운영하면서 보고 배울 모델이 없었다. 다른 독서모임은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다 알았다. 독서모임 서비스에 돈을 낸다는 게 생소했다. 내가 알아볼 땐 후기가 별로 없었다. 솔직히 초반에 반짝, 바짝 돈을 모아 사라지는 건 아닐까(...) 했다.
시간이 흘렀다. 트레바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들이나 팔로잉하는 분들이 모임장을 하는 걸 보게 됐다. (페이스북 피드에 트레바리 광고가 계속 나왔던 것도 한몫..?)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다녀온 후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시간이 검증한 모임이라면 가볼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트레바리 새 멤버 모집 글을 보고 어떤 모임들이 열리는지 봤다. 거의 대부분 흥미로웠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내가 읽은 책을 하는 모임을 찾았다. 책 꽤 읽었다 생각했는 데 몇 개 없었다(...). 편중된 독서를 했단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많이 겹치는 책을 하는 모임이 마케팅 모임이었다.
마케터는 아니지만 마케팅과 브랜딩 책을 좋아한다. 글 쓰는 게 일이고 취미다 보니, 광고 집행을 직접 안 한다 해도 잘 읽히고 잘 퍼지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3가지 목적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해서 최종 결제를 했다. 첫째는 다른 독서 모임은 어떻게 진행하는가?를 배우기 위해, 둘째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셋째는 마케팅 하는 사람들에게 마케팅을 배워보기 위해. 거기에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임으로 신청했다.
결제 후 카톡방이 열린 뒤에 알았다. 내가 가야 할 곳이 가까운 안국이 아닌 정반대인 성수라는 걸. 깊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가 있는 목동에서 가려면 정시 퇴근하고 바로 출발해도 모임 시작에 맞추기 힘들다. 돌아올 때는 어막차를 걱정해야 한다. 2년의 기다림을 더 해야 할까 했지만, 다른 모임을 알아볼 정신이 없어 그냥 하게 됐다(...)
우아한형제들 장인성 이사님이 쓴 <마케터의 일>을 읽어야 했다. 모임 전전날에 서평을 써서 올렸다. 아무도 안 읽겠거니 하고 후루룩 썼는데, 모임을 이끄는 파트너님은 읽은 것 같았다. 퇴고라도 좀 할 걸.
서평에 썼던 내용 중 한 부분. 강연회 준비를 위해 장인성 이사님과 문자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때마침 이 책 초반부를 읽었는데, 일 잘하는 사람은 메일 하나도 다르게 보낸다는 내용이 있었다. 문자를 내가 먼저 받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겠단 내용의 간단한 답변을 적는 데도 몇 번을 지웠다 썼다 했다. 타이밍도 참.
모임 날 업무를 마치고 후다닥 달려갔다. 들어갔을 땐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 보였다. 아마 양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서로 질문을 시킨 모양이었다. 누구이며, 뭐 하며, 왜 왔는지. 나이와 회사명은 밝히지 않는 분위기로 보였다(늦게 들어가서 눈치껏 본 거라 아닐 수도...).
첫 만남까진 낯을 가리는 편인데, 말을 해야 해서 우물우물 아무 말로 답했다. 쉬는 시간을 갖고 2번째 시간. 각자 좋아하는 브랜드, 최근에 산 물건을 이야기했다.
책 내용 중 공감/비공감도 이야기했다. 파트너님은 반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 의견에 반대 의견을 부드럽게 꺼내는 듯했다. 끄덕끄덕 만 있으면 모임이 늘어질 수 있으니, 의도된 설계인가 싶었다.
한 달에 1번 모여서 친해질 수 있을까? 란 생각도 잠시. 정기적인 번개 모임이 있었다. 모두가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책 대신 서로를 이야기하는 시간. 뒤풀이도 있었지만, 아침 약속이 있어 돌아오게 됐다. (뒤풀이에 간다면 할증 택시(ㅠ.ㅠ) 또는 찜질방의 옵션을 선택해야...)
모임 끝나고 각자 기대했던 바, 소감 등을 듣는데 그 자체가 좋았다. 회사-집만 왔다 갔다 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분들, 마케팅에 관해 배우고 싶은 분들, 재밌어 보여 온 분들 등. 평생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때면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책을 빼고도 이 대화를 위해서 돈을 낼 사람들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4번의 만남, 4권의 책으로 마케팅의 정수를 배우고,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야 누군들 책을 안 읽을까. 다만 다양한 생각의 교차점에서 얻는 통찰, 번뜩임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 모를 사람들과 느슨한 네트워크를 갖게 된단 점에선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역시 플랫폼이 짱인가.
모임 끝나자마자 글 하나 써야지 했는데 어느새 다음 주에 다음 모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