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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Oct 30. 2018

<퍼스트 맨> 인류의 도약을 위해 걸어야 했던 것들

스포일러 없는 간단한 평 : 영화 평점 4.0 / 5.0 (점수 비교 : 인터스텔라 4.5/5.0, 그래비티 4.5/5.0)

<퍼스트 맨>은 용산 아이맥스 같은 곳에서 가능한 크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화면 크기에 따라 간접 경험의 질이 달라질 영화다. 살짝 MSG 뿌리면 달에 직접 가본 느낌을 느낄 수 있냐 없냐 정도.

애정 하는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달 탐사에 집중한 영화는 처음 봤다(이미 있겠지만). 고작(!?) 달에 가는 내용이라 다른 우주 영화처럼 스케일이 크지 않지만, 극적이지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처절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영화 음악은 듣다 보면 누가 들어도 저스틴 허위츠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보통 영화 흐름이 탄탄해서 집중하게 되면 음악을 잘 못 듣는데, 초집중 상태에도 음악이 뚫고 들어왔다. 이질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음악 자체가 영화에 잘 녹아들어서 내 뇌리에 스며들어온 느낌이다. 영화 끝나고 나서 집에 와서도, 지금도 앨범 전체를 계속 돌려 듣고 있다. 라라랜드 만큼이나 여운을 준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우리는 달에서 돌아온 후의 영광만 알고 있다. <퍼스트 맨>을 통해 달에 가기 위해 어떤 것들을 지불했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영화는 달에 가기 위해, 갔기 때문에 얻은 것들과 잃은 것들, 비교할 수 없는 가치들을 보여준다. 인류 지평의 확장과 죽어야 했던 비행사들과 복지를 누리지 못한 이들 중 무엇을 택하는 게 맞았을까. 한 사람의 한 걸음으로 인류는 얼마큼 도약했을까. 인류의 도약을 위해 지불된 삶은 얼마큼일까.


닐에 집중된 내용이었지만, 지나가는 학자들, 동료들을 통해 달 탐사의 위대함이 아니라 달에 가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죽은 딸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컸던 닐. 사람에겐 극복할 수 없을 고통은 또 다른 극복할 수 없을 도전을 통해 졸업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딸과 함께 보던 달에 도착해서야 떠나보낼 수 있었기에.


영화 속 닐은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감정의 표현이 밖보다 안으로 향하는 사람. 딸의 죽음에 터져 나오는 감정을 방에 들어가 혼자 울며 풀어낸다. 나도 비슷하게 감탄, 슬픔 등의 감정이 안으로 향하는 사람이라 어느 부분에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우는 건 반대 성향의 사람이 눈이 부어서 안 보일 정도로, 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목이 쉬게 우는 것이다.


닐은 아내에 따르면 안정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전쟁 경험 외에 힘든 일이 많지만, 닐은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딸이 죽은 직후 바로 일을 나가기도 한다.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책임감 또는 어떤 근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 성향은 딸의 죽음 이후 동료들도 잃게 되면서 '독기'로 변하게 된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닐은 그 감정을 오직 목표를 이루는 데에만 쏟아붓게 된다. 아내와 힘든 일을 말하지도, 아들들과 친밀함을 유지하지도 못하게 된다. 물론 일이 잘 풀리고 있을 땐 아니었지만. 


닐은 왜 그토록 달에 가고 싶어 했을까? 나사와 면접에서 닐은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라고 말한다. 이전에 볼 수 없던 뭔가를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고도. 인류는 달에 다녀온 후 달라졌다. 다녀온 위치만큼 달라진 시각으로 진일보하였다. 그리고 그만큼 무언가 많은 것들을 잃었다.


영화를 보며 인류는(미국은)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걸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정치적 배경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안다. 기술 발전에 있어 소련에게 계속 뒤처지고 있었고, 이기려면 둘 다 모르는 미개척 분야에 도전해야 했다. 훈련사들에게 달에 갈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면, 저게 저 때 어떻게 됐을까 싶다.



영화는 그 계획을 둘러싼 당시 거대 담론보다, 이루기 위해 모인 사람에 집중했다. 미국 내 최고 인재들이 모였다. 그래도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과제였다. 처음엔 힘들어봐야 토만 하면 되는 훈련들이었다. 갈수록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떨어지면 다치는 게 아니라 죽는 훈련들. 죽음은 비극에서 일상이 되었다. 사망 플래그를 느꼈음에도 소중했던 에드, 거스, 로저의 허망한 죽음에 입이 벌어졌다. 닐은 어땠을까.


달에 가기 전인 제미니 8호 프로젝트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 장치들이 믿을 만한지 알 수 없다. 만든 사람은 타보지 않았다. 조여진 나사가 꽉 조여진 건지, 창문이 버틸 수 있는 건지 확인은 닐이 해야 했다. 감당은 닐이 해야 했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실제로 들 때 오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파리 한 마리가 주는 불길함이란.


실전처럼 훈련해야 실제로 할 수 있었다.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훈련했기에 죽을 뻔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 몇몇은 죽기도 했다. 훈련만 하면 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내부와 외부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가십으로 소비됐고, 각종 비난을 받았다. 



닐은 그럴수록 모든 걸 걸고 훈련만 하게 됐다. 감정이 제거된 사람처럼 몰두했다. 달에 가기로 한 뒤에도 아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게 됐다. 도리어 큰 아들이 아빠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위대한 임무'를 위해 닐과 그의 가족, 그리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무엇을 걸어야 했을까. 잃어야 했을까. 


닐은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 진 딸 이야기를 밖에 안 하고, 혼자 삭히는 사람이었다. 기댈 곳이 없어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닐은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그도 그냥 우리 주변에 있을 평범한 사람이다. 힘듦을 느끼고, 위로가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까스로 달에 도착했다. 지구는 멀리 보인다. 천장에 있던 달이 땅이 될 때, 우주에서 찍은 라라랜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요의 바다. 소리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달의 모습은 아이맥스로 봐야만 달에 온 느낌을 받을 것 같다. 흙 파고 작업하면서도 닐은 딸 생각을 한다. 



닐은 왜 달에 가고 싶어 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딸과 함께, 딸을 안고 봤던 그곳에 왔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보이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딸과의 소풍, 추억, 포옹, 체온을 떠올린다. 그리곤 간직했던 기억 속 딸을 고요의 바다로 보낸다. 그 하나를 위해 왔는지 모른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계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인류의 도약을 위해,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모든 것들은 값으로도 비싸고, 값으로도 매길 수 없기도 하다. 그만큼 지불해서 얻은 것들은 얼마일까. 양 쪽 다 가늠하기 어렵다. 이미 일어난 일에 '만약'은 의미 없으니.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어떻게 보면 스포일러라고 할 게 없는 영화다. 달 탐사에 관해 조금만 관심 있어도 다 알 내용이니깐. 이 영화의 시선은 달 탐사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라기 보단,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에 있다. 누군가의 수고, 헌신, 희생, 죽음, 삶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우리의 삶이 겹쳐 보인다. 일을 하고, 꿈을 좇고, 가족을 꾸리고, 웃고, 다투고, 싸우고, 화해하고, 죽고, 살아나고, 힘을 낸다. 우리의 일상이 먼 훗날 어떤 역사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저 한 걸음씩 살아가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까진 몰라도, 오늘은 분명 우리의 역사가 될 것이다.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에 해낸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이 인상 깊었다. 어려움에 대한 도전은 마음을 끓게 한다. 최근 비슷한 느낌의 글을 썼는데, 케네디 연설의 영향인가..?!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건너 건너 들었나.



이 글을 읽은 분은 <퍼스트 맨>을 어떻게 보셨나요?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도 좋지만,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을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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