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돈 내고 모임에 가는 이유
한때 누구나 가진 감성을 표현하면 '오글거린다'라고 희화화하는 바람에 쓸 곳이 사라졌었다. 대신 최근엔 '갬성'이라는 위트 있는 표현을 넣어 오글거린다는 말에 방어할 수 있게 됐다.
요새는 TMI, Too Much Information이라는 표현이 자주 들린다. 보통 용례는 누가 묻지 않은 말 또는 관심 없는 분야 이야기를 길게 할 때 쓴다. 갈수록 이 Too Much 기준이 짧아지는 느낌이 든다. 나도 혼자 말 많이 하는 사람은 버거워하는 편이지만, 말을 좀 오래 한다고 TMI라고 말하기는 주저한다(TMI와 Too Much Talker는 다른 범주라고 생각한다).
오글거린다는 말이 감성을 표현하는 걸 막아버렸다면, TMI는 자기를 표현하는 걸 막아버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기 이야기를 할 곳은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왜 그런 말을 많이 할까. 남들 이야기를 별로 안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자기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상대 배려 없이 계속 말하는 걸 긍정하는 건 아니다. 그건 '투머치토커'처럼 다른 맥락에서 봐야 한다)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C.S 루이스는 <시편 사색>에서 세상은 찬양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시인을 찬양하는 소리, 여행지의 풍경을 찬양하는 소리부터, 날씨, 포도주, 음식, 배우, 자동차, 말, 대학, 나라, 위인, 아이, 꽃, 산, 진귀한 우표, 희귀한 딱정벌레, 심지어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또한 그는 '제가 놓치고 있었던 사실은, 사람들은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대상을 찬양할 때는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도 그 찬양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는 점입니다. “어때, 그녀 정말 사랑스럽지 않아? 그거 정말 훌륭하지 않아? 그거 정말 대단하지 않아?”하면서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짚어낸 이 부분은 인간의 본성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렇게 만족감, 기쁨 등을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우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찬양하기 좋아하는 까닭은, 찬양이 단순히 우리의 즐거움을 표현해 줄 뿐 아니라 완성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TMI라는 표현은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앗아가 기쁨의 완성을 막아버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는 말하고 싶어 한다. 표현하고 싶어 한다. 누가 묻지 않아도 좋으면 먼저 말하게 되어 있다. 자신에 관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 심지어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돈을 낸다. 최근에 많은 유료 모임들이 성행하는 건 어쩌면 TMI 해도 괜찮은 곳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일 수 있다.
나도 유료 독서 모임인 트레바리에 나가고 있다 *독서 모임에 왜 돈까지 내면서 갈까?(트레바리 후기 글). 4/4분기 마지막 모임을 마친 뒤 다음 1/4 분기도 이어 하기로 했다(이게 바로 TMI...). 이번에도 트레바리 모임 대부분이(내가 본 광고에서 유추해본다면 최소 1,500명 이상) 빠르게 마감했다고 한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의 독서 모임을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위 후기에서 '모임 끝나고 각자 기대했던바, 소감 등을 듣는 데 그 자체가 좋았다. ... 책을 빼고도 이 대화를 위해서 돈을 낼 사람들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라고 썼다. '책을 빼고도'. 이 부분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트레바리 모임의 가성비는 ‘뒤풀이’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적은 인원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실컷 하고 들어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은 매개일 뿐일 수 있다. 독서 모임에서조차.
이제 트레바리 같은 독서 모임 외에도 살롱 문화를 기반한 모임들이 생기고 있다. 열정에 기름 붓기에서 하는 크리에이터 클럽, 취향관, 노마드로그의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글쓰기 워크샵(...) 등 다양한 모임이 일어나고 있다.
살롱 문화는 강의, 강좌와 다르다. 들으러 가는 게 아니다. 어떤 주제가 있든 없든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는 게 핵심이다. 지식 습득이 본질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만 해도 말하기보다 들으러 가는 게 가는 이유였다. 다만 나도 내 말을 사람들이 잘 들어줄 때 오는 즐거움이 큰 걸 느꼈다. 내가 했던 말을 누군가 메모하는 모습을 보면 으쓱하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어떤 모임을 나간 사람 중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언젠가 '갬성'처럼 TMI를 정당화해주는 표현이 나올 것이다. 우리 모두 TMI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니깐. 하지만 언제 나올지 모를 표현이 나올 때까지 자기 이야기를 못 하는 건 서글픈 일이다. 기쁨의 완성을 할 기회가 많이 줄어든 거니깐.
그냥 아예 자기 이야기를 실컷 해도 되는 모임을 만들면 어떨까? 자기에 관한 TMI를 계속 말해도 되는 모임.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나는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올해 나는 어떻게 보냈는지, 나는 내년에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각자 이야기할 게 얼마나 많을까. 나에 관한 내 생각도 정립하고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어떨까?
마음껏 자기에 관해 생각해보고 써보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면 같이 모여보자.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해도 괜찮은 모임을 만들어 보려 한다. 이제 모집 마감이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글쓰기 워크샵
흥미가 생겼다면 신청 전에 https://www.instagram.com/chaeminc/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 바란다. 첫 회 특별 프로모션을 안내받을 수 있다. 또 문의 사항도 받고 있으니 편하게 연락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