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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Dec 28. 2020

내가 차멀미를 하는 이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차가 막히는 금요일 오후였고, 합정동을 출발해 강남 남부터미널 부근까지 가는 경로였다. 차가 강변북로 진입구간에 다다를 즈음 도로는 이미 주차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변북로에 진입하자마자 멀미 기운이 밀려왔다. 뒷좌석에 앉은 게 실수였다. 다행히 친구의 차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가 있었다.


차멀미에는 전조증상이 있다. 휘발유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차면서 뒷목이 당겨오다가 식도 깊숙한 곳에서부터 침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침은 입에서 목으로 삼키는 것인데, 멀미가 시작될 때면 침이 역방향으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제발, 오바이트만은 참고 싶었다. 그 날은 두어 달 동안 참여했던 큰 프로젝트의 회식 날이었고, 앞좌석의 두 친구는 뒷좌석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재미난 대화에 빠져 있었다.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차 안에 풍기게 될 고약한 냄새는 또 어쩔 것인가.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는데, 나에겐 멀미도 그렇다. 브레이크 밟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차는 쉼 없이 덜컹거렸고 급기야 나는 비닐봉지에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다. 회식은커녕 흔들리는 차 안에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차가 반포대교 남단을 막 지났을 때 나는 친구에게 차를 세워달라 했고, 황급히 인사를 나누며 차에서 내렸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는데도 한동안 어지러워 반포대교 진입로에서 미아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지긋지긋한 멀미. 어렸을 때부터 버스만 타면 멀미를 했다. '키미테'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엄마가 멀미에 좋다며 어느 날 말린 인삼을 사 오셨다. 버스를 탈 때마다 말린 인삼을 꾸역꾸역 씹어댔지만 인삼의 쓴 맛 때문에 멀미가 더 날 것 같았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인가는 엄마가 배꼽에 파스를 붙여준 적도 있다. 배꼽에 파스라니... 멀미 전용 파스가 있다는 얘기는 근래에 들었지만 당시로서는 어린 나에게도 참으로 이상한 처방이 아닐 수 없었다.


딸을 향한 엄마의 정성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서 멀미도 점점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다시 발목을 잡는다. 모처럼 친구가 사는 강화도에 놀러 갔을 때도, 온 가족이 오키나와 여행을 갔을 때도 멀미를 했다. 오바이트를 하는 고모를 보며 올케는 물론 어린 조카들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나로 인해 불편해질까 봐 마음 졸였었다.    


어릴 때야 그렇다 쳐도 나이를 훌쩍 먹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멀미를 한다는 게 스스로도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차멀미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해 멀미를 하는지도 몰라... 


상황이 조금 낯설거나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뭔가 거리끼는 마음이 있을 때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것 같다. 그날도 사실 회식 자리에 가기 싫었던 거다. 게다가 웬만하면 하루에 두 개 이상의 약속은 잡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점심 약속이 저녁 회식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점심 약속만으로도 이미 체력은 다했고, 차가 많이 막히는 상황에서 강남까지 간다는 게 버겁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차라리 회식에 가지 않겠다고, 하루에 연이은 약속은 힘들다고 말을 했으면 됐을 것을... 말이 되지 못한 불편한 마음이 멀미로 토해져 나온 것이다. 


예민한 마음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의 즐거운 만남조차 긴 시간을 힘들어한다. 때가 되면 에너지를 충전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그 마음을 알기 전까진 나도 이런 내가 유별나게 느껴졌다. 유별난 부분을 들키기 싫어 아무렇지 않은 척, 성격 좋은 척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특히나 살벌한 방송 현장에서 예민함은 쓸모없는 약점이라 여겼기에... 


오랜 멀미 끝에 나는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남들보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조금 느리고,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내가 결코 무능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런 나를 감추지 않고 인정해주면서부터 세상 또한 흔들림 없이 편안해졌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은 외향적이고 활력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이끌리겠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기 길을 가고 있으리란 믿음이 있다. 때로 어느 노래에서, 어느 에세이에서, 어느 영화에서, 어느 미술작품 속에서 그들을 만난다. 함께 만나 수다를 떠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각자의 방에서 서로의 작품으로 만나 말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나도 그들의 섬세한 마음에 다가가 말을 걸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고, 차멀미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쩌면 차멀미가 사라지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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