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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Feb 18. 2021

모범생 콤플렉스 벗어나기

평소 모범생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나로서는 꽤나 벗어나고 싶은 이미지다. 단정하고 공부 잘하고 책임감 있어 보인다는 칭찬의 의미로 하는 말일 수 있지만, 배배 꼬인 나는 어쩐지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모범생 같다고? 아, 착하고 말 잘 듣게 생겼다는 말의 고상한 표현인 거지? 앞으로 나를 만만하게 보겠다는 말이로군.'


모범생처럼 보인다고 말해주는 주체는 그 말을 함으로써 나를 모범생이라는 틀에 더 가두어 두려는 듯하다. 말 잘 듣는 모범생 하나 옆에 두면 도움될 일이 많겠다는 은밀한 의도를 숨긴 채 말이다. 


어쨌거나 여기까지는  삐딱한 마음이 만들어낸 자조적인 관점의 해석이었고, 모범생 이미지로 이득을 본 점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첫인상으로 나를 신뢰해주었고, 일을 할 때도 내가 가진 능력보다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많았다. 모범생 이미지가 만들어낸 초두효과인 셈이다. 이 또한 모범생 이미지가 준 혜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비교적 적게 만났고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환대를 받았다. 

친한 친구 한 명은 책임감 있고 착실한 성격과 반대로 첫인상에서 모범생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그런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본다며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범생 이미지에 대해 삐딱한 마음을 갖고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나를 모범생으로 보아주는 사람들을 배배 꼬인 마음으로 탓할 일이 아니다. 실은 모범생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모범생이라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모범생처럼 보이기 싫어서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탈색할 용기도 없다. 적어도 나는 반듯하고 단정해서 모범생이 된 사람은 아니다. 두려워서 모범생이 된 쪽에 속한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줄 알고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생활을 하게 됐을 때도 직장상사를 비롯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들의 말을 거스르는 게 두려웠다. 아니 그들의 말을 거슬렀을 때 치러야 할 후폭풍이 두려웠다. 그러니 그냥 모범생이 되어 착실하게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 더 나았다. 앞서 언급한 많은 사람들의 신뢰와 긍정적인 평가는 내가 모나지 않게 그들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얻은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는 늘 부작용이 따른다.   


상대의 말을 잘 들으면 들을수록 상대는 자기 방식대로 내 숨을 점점 조여왔고, 나는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모범생으로 길들여졌을 뿐 천성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기에 마음 안에서 항상 뭔가가 삐그덕거렸다. 정당하게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마음에 쌓여 삐딱한 마음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심하게 저항했다. 고분고분하지만 어쩐지 시니컬한 사람, 친근해 보이지만 곁을 잘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상대가 기대하는 모습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다 관계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어색해진 관계를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치거나 내가 먼저 인연을 끊었다. 이런 행동 패턴을 제대로 인지하기 전까지 모범생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대가를 한동안 반복적으로 치러야 했다.  


이런 나에게도 학창 시절 나름 '반모범생'적이었던 기억이 하나 있다.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말 그대로 '나름'의 반모범적 경험이니 비웃지는 말아달라. 


중학교 3학년 때인가. 등교를 하다가 학교 운동장에서 조기축구를 하던 아저씨가 잘못 찬 공에 머리를 세게 맞는 일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 잠도 덜 깬 채 터덜터덜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다가 한방 제대로 맞은 것이다. 조기축구 멤버들이 달려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며 상황은 어찌어찌 일단락되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머리에 이상은 없었다. 


아마 평소 같으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여느 때처럼 수업을 듣고 귀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일인지 삐뚤어졌다. 수업 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 있으면 눈에 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눈에 띄고 싶었던 걸까, 잠을 잔 것도 아니면서 계속 그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모범생'이던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나를 의아하게 여긴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침에 등교하다 머리에 축구공을 세게 맞아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순식간에 일이 커졌다. 교감 선생님까지 찾아와서 당장 검사를 하러 가자며 본인 차에 태워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교감 선생님의 차를 타고 병원에 가면서 꾀병임이 들통날까 봐 살짝 마음 졸였던 것도 같지만 뻔뻔하게 아픈 척을 했었다. 검사 결과, 예상대로 당연히 아무 이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날도 소심하게 반항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기를, 엎드려서 외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까지 모범생은 아니에요!"라고 말이다. 이 문장에서 방점은 '그렇게까지'에 있다. 커다란 범주로 따져보면 모범생은 모범생인 것이다. 모범생이라서 소심하게 반항도 그런 식으로 했던 거겠지. 아마도 평생 어딜 가나 모범생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단언컨대 죽기 전까지 내가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탈색하는 일, 콧구멍과 입술에 피어싱을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고지식한 나를 누가 모범생이라고 놀리더라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려워서 모범생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반듯한 마음을 선택함으로써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모범생이 되련다. 혹여나 모범생 같다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칭찬을 내 멋대로 꼬아서 시니컬하게 해석한 거였다면 그분들께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못난 마음 때문이었다. 


모범생은 착해 빠져서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 다른 말로 하면 롤모델 아닌가. 나의 좋은 태도로써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모범생도 나쁘지 않은, 아니 꽤나 축복받은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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