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의 기쁨과 슬픔

by 조혜영

벼르고 벼르다 미용실에 갔다. 예약을 했다가 날짜를 한번 바꾸기까지 했다. 언젠가부터 미용실 가는 일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미루고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가벼운 커트나 뿌리 염색 정도면 모를까, 펌을 해야 하는 날엔 미용실 가는 일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손상된 머리카락에 영양을 주고 곱슬머리를 펴서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만드는 데 무려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꼼짝없이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그 3시간이 어쩐지 부자유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마음 같아선 삭발이라도 하고 싶은데 두상이 예쁘지 않아 포기했다. 대충 길러서 묶고 다녀도 되지만 내 몰골을 잘 알기에 꾸역꾸역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미용실에 간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머리 모양에 따라 달라 보이는 얼굴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비포/애프터의 차이가 꽤나 커서 놀랐었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가 아닌 나로서는 역시 머리빨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진이었다. 남들 보기에 그럭저럭 문명인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1년에 4회가량의 커트와 염색을 하고 2회의 펌을 한다. 이 횟수는 미용실과의 오랜 밀당 끝에 내가 선택한 마지노선이다.


내가 미용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부자유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3시간 때문인데, 그 3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많은 궁리를 했었다.


첫 번째 방법은 매우 흔한 방법으로, 미용실에서 건네주는 패션잡지를 보는 것이다. 평소 내 돈 주고 잡지를 사보는 일은 거의 없기에 미용실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될 테다.


마리끌레르와 보그, 우먼센스 등이 내 앞으로 주어지고 일단 마리끌레르부터 펼쳐보기 시작한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화장품 광고가 가득하다. 베스트 패션과 워스트 패션 가르기, 어느 연예인이 드라마에서 입은 패션 따라 하기, 환절기 보습에 좋은 뷰티 제품과 핫 플레이스 정보, 연애 꿀팁 등의 정보가 가득한데 멋있고 화려한 사진에 볼거리가 많다. 문제는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사고 싶은 것도 하나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피부가 거칠어졌는데 이 화장품도 당장 사야 할 것 같고, 녹색이 유행이니 녹색 아이템도 뭐든 하나 구매해야 할 것 같다. 바지가 좋을까, 치마가 좋을까, 아니면 구두가 더 나을까. 상상 속에서 무한대로 쇼핑을 하고 있다. 급하게 현실로 돌아와 가성비를 생각하니 머리가 질끈 아파온다. 더 이상 물욕과 두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 보그와 우먼센스는 대충 넘겨보고 덮어버린다. 잡지 3권을 보는데 아무리 길어봐야 30분도 안 걸린다.


두 번째 방법은 휴대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친구와 카톡을 하는 것인데, 시도해보니 그것도 30분이면 금세 지루해진다.


세 번째 방법은 읽고 싶은 책을 가져가는 것이다. 딱딱하고 지루한 책보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히는 소설이 좋겠다. 미용실 직원에게 가방을 맡기기 전, 막상 가방에서 책을 꺼내려니 조금 창피하게 느껴진다. 도서관도 아니고 미용실에서 책이라니... 왠지 좀 고루하고 따분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일부러 책도 베스트셀러로, 이왕이면 표지가 예쁜 걸로 골라갔다. 하지만 미용실에 책이 아니라 잡지가 비치되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머리에 온갖 것을 바르고 달아놓은 채로,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문자로 된 텍스트를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져간 책은 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은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나는 궁금해진다. '이런저런'에는 어떤 종류의 화제가 있을까?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은 재미있게 말도 잘하던데... 일부러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니었는데, 심심하고 무료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두 분의 대화에 귀가 열렸다.


요즘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다, 나이 들수록 몸매 관리를 해야 한다, 날씬해지니 남편이 친구들에게 내 자랑을 하더라는 말에 진심 행복이 느껴진다.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은 같은 텐션으로 리액션을 한다. 손님을 누가 40대로 보겠냐며, 너무 예쁘고 옷태도 좋으시다, 남편분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 등등.


나는 6년 간 같은 미용실을 다니면서도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이 과묵하고 점잖은 스타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리 말이 청산유수일 줄...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두 사람의 대화를 놓친 사이, 화제는 주식 이야기와 친구 남편이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와 바람피운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딱히 얼굴과 몸매를 내세우고 싶지도 않고, 내 자랑을 해줄 남편도 없는 나는 이런 류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나의 일상을 이러쿵저러쿵 남에게 얘기하는 것도 낯간지럽고 어색하다. 적당히 날씨나 연예인 이야기를 몇 번 주고받고 나면 화제가 끊겨 버린다. 그러면 잠시 침묵. 내 머리를 만져줄 때 과묵하고 점잖아 보였던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손님인 나에게 맞춰주고 있었던 거였다.


미용실의 화려하고 사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는 늘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여자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이 매력적인 여성이 되는 데 자격 미달이라도 되는 듯. 내가 만들어 놓은 일상의 틀 안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던 감정이 미용실에만 가면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미용실에서 느낀 부자유함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미용실의 슬픔이다.


결과적으로 미용실에서의 3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나의 방법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3시간을 투자하여 덥수룩한 자연인에서 쿨한 문명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미용실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지극한 기쁨이다. 머리 모양의 비포/애프터에 나는 민감한 편이다. 더구나 내가 다니는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센스 있고 실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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