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혜영 May 01. 2021

저질체력자의 이유 있는 변명

잠을 8시간 이상 잤는데도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찌뿌둥하다.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서 뒹굴거렸는데도 꼼짝할 기운이 없다. 바쁜 하루를 보낸 다음날에는 아무 일정도 잡지 말고 집에서 쉬어줘야 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할 일이 생기면 밤새 이불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난 날에는 피곤하고 눈꺼풀이 무거워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이 모든 이유로 일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주어진 시간을 허송세월 할 때가 많다. 그렇게 낭비된 시간에 대해 죄책감이 든다.




당신도 이런 부류의 인간인가? 그렇다면 먼저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나 역시도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위로할 자격이 있다. 한마디로 나는 '저질체력'의 소유자이다. 짧은 동영상 몇 개를 보고 나면 배터리가 나가버리는 오래된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출근 전 독서를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 하루 중 자투리 시간을 쪼개 쓰며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사람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뭐라도 할 것을 찾아 몸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러고도 다음날 가뿐하게 새 날을 시작할 수 있는 그들이 내겐 질투의 대상이다. 외모나 부, 명성도 아닌 그들의 체력이 부러운 것이다. 나에겐 그들이 감히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영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효율성과 생산성 지표로 따지면 최하까진 아니더라도 하급에 가깝지 않을까.


내 경험상, 자기 계발 능력 또한 팔 할은 체력이다. 내가 아는 자기 계발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인생에서 최대의 효과, 궁극적으로는 성공을 이뤄내는 것인데, 이게 다 체력 싸움이다. 체력이 부족하다면 결국 뒤처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이 엄습해온다. 내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거뜬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쓰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룻밤을 새더라도 다음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했는데, 운동을 하니 더 피곤해진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몸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었는데, 살이 쪄서 몸이 무거워지고 몸이 무거워지니 더 피곤해진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가능하면 움직이지 않았는데, 근육이 빠져서 더 피곤해진다. 반은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지금까지 나의 행동 패턴은 이런 식이었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저질체력의 터널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랄까.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 의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체력이 안 좋아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해 낼 의지가 없으니 체력도 같이 바닥을 기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다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생기는 날에는 잠을 안 자도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고, 밥을 안 먹어도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아쉽게도 그런 날은 살면서 며칠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지만...


그렇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일매일이 행운의 날인 듯, 기적이 가득한 날인 듯 바라보는 태도를 지닌다면 특별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에너지 가득한 날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몸속에서 행복 호르몬이 대량 방출되어 활력이 샘솟는 일상,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멋진 글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실제 삶에서 매일 그런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은 깨달은 성자가 아니라면 거의 환상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래서 대체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글쎄, 핑계나 변명은 이쯤에서 멈추고 나의 함량 미달 체력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의 효율을 내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답을 찾고 싶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방법은 이렇다. 불필요한 곳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쓰지 않기, 대신 필요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몰입하기, 그리고 기꺼이 나에게 사치스러운 휴식을 허하기.


하지만 이 방법에도 부작용은 있다. 불필요한 데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하다 보니 자의적인 기준으로 '필요'와 '불필요'를 판단하게 된다. 나에게 불필요한 일이 상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경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 내게 필요한 것에만 에너지를 쓰는 일이 조금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함량 미달, 저질체력으로 태어난 게 상수라면 그 상수를 기준으로 삶을 재배치할 수밖에. 상수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비생산적으로 느껴지는 과한 휴식 시간 또한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쓸모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있다면 체력이 다하는 선에서 조금만 일하고도 넘치는 돈을 받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자기 계발이 필요할 것 같고, 자기 계발을 하려면 또 체력이 필요한 것인가. 이런,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출구 없는 저질체력의 늪에서 도돌이표처럼 왔다 갔다 하지 않으려면...


다행인 것은 한약을 먹으면 반짝 체력이 샘솟는다. 특히 최근에 친구 소개로 알게 된 공진단은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없던 체력도 솟구치게 하는 강한 마력을 지녔다(이 글은 절대 공진단을 파는 한의원의 협찬이나 뒷 광고를 포함하지 않는다). 플라세보 효과일지라도 당분간은 공진단을 꼭꼭 씹어먹으며 연명해야겠다. 세상은 넓고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선회를 좋아하지만, 인생을 날로 먹을 수는 없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