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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Jun 12. 2021

지극히 사적인 두 발 자전거 도전기


어릴 때부터 유난히 겁이 많았던 탓에 두 발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세 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옮겨가는 것이 마치 서커스 동작을 익히는 일처럼 느껴졌었다. 폭이 몇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좁은 바퀴가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자전거에 올라탔다 균형을 잃고 넘어졌던 경험은 나를 자전거와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잊고 살다가 서른을 훌쩍 넘긴 어느 날, 문득 자전거가 생각났다.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마침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집 앞 작은 하천을 따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한강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바람을 가르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작정 자전거부터 샀다. 어디서 전에 없던 용기가 났는지 자전거를 끌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 나는 자전거를 무서워하던 일곱 살 소녀가 아니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성인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한 발을 페달 위에 올리고 나머지 발을 땅에서 떼는 순간 역시나 몸이 휘청댔다. 좀처럼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흔들흔들 왔다 갔다 하는 자전거 바퀴만큼이나 마음도 흔들렸다.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너 원래 운동신경 없잖아? 이제 와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니? 그러니까 누가 자전거부터 덜컥 사래?’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구박하고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생에 자전거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괜한 욕심을 내었나 보다. 이렇게 또다시 포기를 하고 자전거와는 영영 이별을 해야 하나? 12개월 할부로 산 자전거인데 아직 한 달이 채 안되었으니 앞으로 열두 번이나 돈을 지불해야 했다. 카드대금에서 매달 돈이 빠져나갈 때마다 장식품이 되어버린 자전거를 바라보며 속이 쓰릴 것 같았다.      

 

중고사이트에 자전거를 내다 파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고르고 골라 산 자전거였던 지라 마음에 쏙 들었다. 한마디로 자전거가 퍽 예뻤다. 예쁜 자전거에 올라타 한강변을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싶었다. 그러면 보잘것없는 나도 좀 예뻐 보이지 않을까.

 

간절한 바람이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자전거를 못 타는 상황은 아예 머릿속에서 삭제해버렸다. 오직 분명한 하나의 목표만이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든 자전거를 타고 말 테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한순간에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한 발 한 발 페달에 올려놓는 순간 또다시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명징한 한 문장을 제외하고 내 머릿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 바퀴가 휘청대서 균형을 잃은 게 아니었다. 마음이 먼저 흔들리니 애초에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못 탈 거야, 또 넘어질 거야’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저만치 텅 빈 바닥을 바라보았다. 바퀴가 잘 굴러가 준다면 그 바닥은 잠시 후 내가 통과할 공간이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모은 후, 발 하나를 페달에 올려놓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나머지 발 하나도 땅에서 떼어내 페달 위에 올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두 발이 페달에 닿는 순간, 망설임 없이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힘차게 페달을 돌리고 또 돌리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자 신기하게 중심이 잡히면서 바퀴가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느새 바퀴는 몇 분 전, 내가 바라보았던 그 텅 빈 바닥을 부드럽게 통과해가고 있었다. 와, 드디어 해냈어! 



 

물론 첫 주행은 채 십 미터도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추었지만 몇 번을 반복하자 직선 코스는 꽤 오래 달릴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순조롭던 주행에 첫 번째 장애물이 다가왔다. 


아파트 단지 내 차량 진입을 막는 낮은 기둥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대략 한 뼘 정도 될까. 능숙한 바이커라면 충분히 지나가고도 남을 넓이였지만 초보자인 나에겐 너무도 좁게 느껴졌다. 바퀴가 기둥에 부딪혀 바닥으로 넘어질 것 같았다. 

 

초보자라는 핑계로 안장에서 내려 자전거를 밀고 통과해도 되었다. 아니면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으니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왠지 그러기가 싫었다. 어찌 됐든 그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자전거로 통과하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기둥에 의식을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좁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의식을 두기로 했다. 좁은 공간을 마음 안에서 넓게 확장시켰다. 기둥에 의식을 두지 않으니 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느껴졌다. 왠지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하나, 둘, 셋! 기둥이 아닌 공간에 의식을 둔 채 페달을 돌렸다. 바퀴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성공이었다.



이것이 내가 자전거를 배운 방법이다. 혹 누군가는 자전거 그까짓 거 그냥 타면 되지 뭐가 어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면, 이건 유난히 운동신경 없고 겁 많은 내가 자전거를 배운 방법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며 바람을 가르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자전거를 배우면서 어쩌면 나는 삶의 비밀 하나를 터득한 건지도 모르겠다. 장애물을 보지 말고, 가능성을 바라보라!  


그렇게 나는 서른을 훌쩍 넘겨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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