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던 날, 흔들리는 강물 위에 묶여있는 오리배를 보았다. 한강 둔치에 자리한 카페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그만 오리배의 눈을 보고 만 것이다. 횟집 수족관의 광어와 눈이 마주친 이후로 회를 더 이상 입에 댈 수 없었다는 지인처럼 나는 이제 오리배를 차마 타지 못할 것 같다.
살아있는 것들의 눈처럼 사물의 눈에도 감정이 묻어난다. 어떤 사물에 눈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무언가를 본뜬 것이기에, 눈이 있는 사물에는 알 수 없는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줄에 묶여있던 오리배의 눈은 동그랗게 웃고 있었다. 결박된 자의 눈이라고 하기엔 너무 해맑아서 가슴이 저릿했다.
지금은 묶여 있지만 곧 영업이 시작될 테고, 손님들을 맞이할 기쁨에 설레는 걸까.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태우고 강물을 헤엄치는 그 일을 오리배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의 회로를 돌려본다. 오리배를 타 본 적이 있었던가. 실제인지 꿈인지, 혹은 상상인지 알 수 없지만 오리배의 페달을 열심히 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장면이 안개처럼 흐려져 있는 걸 보면 별로 재미는 없었나 보다. 그날, 내가 탔던 오리배의 눈도 그토록 해맑았을까.
오리배의 눈을 보면서 가슴이 저릿했던 것은 언젠가 동물원에서 보았던 낙타의 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등에 사람을 태운 채 같은 공간을 계속 돌고, 또 돌아야 했던 낙타의 눈. 무심코 보게 된 낙타의 눈은 퍽 서글펐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나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 서글픈 눈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다행히 눈앞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파란 하늘과 풍선을 든 아이와 솜사탕 파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자 나는 안심했다.
그렇게 눌러놓았던 감정이 오리배의 천진난만한 눈을 보며 다시 떠오른 것이다. 어떤 의미로 천진난만함, 해맑음, 순수함은 결여를 뜻하기도 한다. 미숙함,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함, 무지, 취약함……
아무리 손님을 제 몸에 태우고 그들에게 추억의 시간을 선물한다 해도 오리배는 한강 너머로 헤엄쳐갈 수 없다. 한강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미지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심하지 못하며, 손님이 떠나고 난 후 다시 묶여있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어떤 저항도 없다. 올곧이 세운 목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한 채 말갛게 웃고 있는 것 말고 오리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에게 닥친 운명이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해맑음과 마주하자 낙타의 눈을 볼 때처럼 서글픔이 밀려왔다.
어쩌면 그건 나의 미숙함과 취약함에 대한 동정이자, 먹고살기 위해 고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야만 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 인지도 모르겠다.
부자유한 현실 속에서 상황이 변하리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태, 내 의지와 선택이 아닌 수동적으로 부여받아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힘겨운 노동의 반복…… 운명처럼, 아니 천형처럼 주어진 짐을 그저 짊어지는 것 외에는 별도리가 없을 때, 살아가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끝날 것 같지 않은 비루한 삶에서 약자인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오리배처럼 친절한 웃음을 지어야 했거나 그보다 더 자주 낙타와 같은 눈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욕실 거울에서 낙타를 닮은 나의 눈을 본 적이 있다.
동물원에서 낙타를 뒤로 하고 도착한 곳에는 회전목마가 있었다. 이름처럼 돌고 또 도는 것이 타고난 운명인 회전목마. 회전목마를 타다가 나는 어지러움에 멀미가 났었다. 회전목마가 어서 멈추기를 바라며, 열심히 회전 중인 목마에게 마음으로 물었다.
'목마야, 너도 이제 그만 멈추고 싶지 않니? 이대로 회전을 멈추고 방향을 틀어 저 멀리 초원으로 같이 달려가지 않을래?'
순간 시간이 다 되어 회전목마가 멈추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답을 듣지 못한 채 나도 목마에서 내려왔다.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목마는 또다시 같은 공간을 회전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오리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리배가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나는 더 이상 그 눈을 볼 자신이 없어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마시고 있던 커피도 식어버린 참이었다.
지하철 2호선이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회전목마처럼 돌고 또 도는 지하철 2호선이다. 다만 위로가 되는 것은 지구도 태양을 그렇게 돌고 있고, 달도 그렇게 지구를 돌고 있다는 것. 지구가 태양이 되고, 달이 지구가 되기 전까지 오리배는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을 것이며 회전목마는 회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도,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