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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Oct 24. 2022

공원 벤치
; 덩그러니 남겨지는 외로움

(때로 나를 웃게 하고 불쑥 눈물짓게 하는) 감정의 사물들 Ep.02


외로움 [웨로움] : 홀로 되어 쓸쓸한 느낌



공원을 산책하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벤치를 볼 때면 나는 거의 앉고 싶어 진다. 아마 ‘앉고’ 싶은 게 아니라 ‘안고’ 싶은 것 같다. 벤치를 안아줄 수는 없기에 나는 가만히 엉덩이를 대고 앉아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걸로 포옹을 대신한다. 


맨 처음 내가 벤치를 안아주고 싶다고 느꼈던 이유는 한낮의 빈 벤치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벤치의 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가로등도 꺼진 적막의 밤, 홀로 남겨진 벤치의 정경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쓸쓸하게 다가왔다. 


공원에는 꽃과 나무도 있고 돌도 있지만 그들에게서는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꽃과 나무와 돌은 그 자체로 온전해 보인다. 그에 반해 벤치는 혼자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사물이다. 의자의 본래 쓰임새가 그렇듯 앉아주는 이가 있어야만 비로소 오롯 해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빈 벤치를 보면 선택받지 못한 자의 외로움이 느껴져 괜스레 가슴이 휑해진다. 낮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밤은 더 말해 무엇하랴. 가슴속에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을 가진 이의 홀로 남겨진 밤, 그 밤의 심정이 어떠할지 말하지 않아도 내 것처럼 분명히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벤치는 사랑받기 위해 매력을 발산하지도 않는다. 아니 상대를 유혹할 재간조차 없다. 여느 의자들처럼 유려한 곡선과 인체공학적 설계, 다채로운 색상으로 상대를 잡아끌지도 못한다. 그저 풍경에 스며든 수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인 공간을 내어줄 뿐이다. 그조차도 선택은 상대에게 달려있다. 벤치는 누군가의 지친 다리를 쉬어가게 할 수만 있다면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 있다는 묵묵함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도 벤치를 보았다. 벤치가 놓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나는 가장 외로워 보이는 벤치를 찾았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이 아닌 외진 곳에 홀로 자리한 벤치였다. 그 벤치 주변으로는 가꿔지지 않은 풀들이 거칠게 자라나 있었고, 앉는 부분엔 먼지가 흩어져 있었다. 두 손으로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가만히 벤치 위에 앉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 때문인지 곧바로 엉덩이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한동안 그렇게 잠시 앉아 있었다. 눈을 감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엉덩이가 따뜻해졌다. 


요즘엔 벤치도 다양하게 변신 중인 모양이다. 강남 거리를 걷다 보면 스노보드로 만든 벤치, 삶은 달걀 모양, 하트비트 형태로 만들어진 기발한 벤치들을 만날 수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이는 이 벤치들은 거리를 걷는 이들에게 호기심으로 말을 건넨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당장이라도 앉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기분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어딘가 인적 드문 곳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평범하고 수수한 벤치들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할 수 있는 만큼 자주 찾아가서 앉아주고 싶다. 가끔은 책도 읽고, 수첩에 생각나는 대로 끼적이기도 하고, 텀블러에 담아 간 커피를 홀짝이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도 듣다가, 등을 대고 누워 잠깐 졸기도 해야지. 벤치가 사적인 공간이 되는 시간이다. 벤치도, 나도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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