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아니 보드라운 것들에는 마음을 달래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 강아지 털, 갓난아기의 볼, 곰인형, 바나나와 아이스크림, 담요가 그렇다.
감기에 걸려 몸이 안 좋거나 괜스레 우울하고 피곤한 날이면 나는 보드라운 것을 탐한다. 바나나를 베어 물고 입에서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말랑말랑한 촉감이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떤 날은 무릎담요를 덮고 하겐다즈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보드라운 것들 중에서 가장 최고는 담요이다. 극세사 양털 담요면 더 좋겠지만 일반 담요로도 충분하다. 30도를 훌쩍 넘나드는 무더운 한여름을 제외하고,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 담요와 한 몸이 되곤 한다. 침대는 말할 것도 없고, 소파와 책상 의자에도 담요가 놓여있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책상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할 때도 담요와 함께라면 이보다 더 아늑할 수가 없다. 담요는 나를 애틋하게 감싸준다. ‘애틋하다’는 단어 뜻 그대로 정답고 알뜰하게 나를 보듬어준다. 마치 나를 아끼고 위해주는 것 같다고 할까.
담요와 함께 나를 애틋하게 보살펴주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애착 베개다. 잠을 잘 때면 이불 아래 얇은 담요를 덮어 침대 안을 포근함으로 채운 채, 옆으로 누워 애착 베개를 안고 잔다. 뒤숭숭한 꿈을 꾸었거나 잠결에 뒤척이다가도 애착 베개의 감촉을 확인하고 나면 이내 안심이 된다.
내가 10년 넘게 사용해온 애착 베개는 보드랍진 않지만 정겹고 든든하다. 마치 할머니가 쓰시던 베개 같다. 이미 꼬질꼬질해진 지 오래이고, 아무리 빨아도 찌든 때가 깨끗이 사라지지 않지만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애틋한 마음에는 햇살이 함께 머무는 것 같다. 할머니가 무와 호박, 고추를 널어 말리던 옛집 마당처럼 따스함이 머문다. 누군가를 향한 애틋함은 다정한 사랑이다. 무를 말려 무말랭이를 하고 호박을 말려 호박고지를 만들고 고추를 말려 고춧가루를 만드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온다. 단풍이 떨어지면 이제 곧 가을도 가고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그런 계절일수록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들이 더 필요해진다. 월동 준비를 위해 담요를 몇 개 더 사야겠다.
겨울이 오면 바나나와 아이스크림 대신,볶은 양파와 버터를 넣고 감자수프를 만들어야겠다. 눈이라도 내리는 저녁엔 새로 산 담요를 덮고 예쁜 그릇에 감자수프를 담아 먹어야겠다. 애틋한 마음을 함께 나눌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