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녀는 CBS 라디오 프로듀서이면서 적지 않은 책을 출간한 에세이스트다. 매혹적인 그녀의 문장은 나를 어떤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그녀가 데리고 가는 세계는 내게 있어 늘 옳은 방향이다.
작년 여름 끝자락에, 정혜윤 작가의 신간 <뜻밖의 좋은 일> 북 콘서트에 다녀왔다. 작가는 이번 자신의 책에 대해 ‘모든 것을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문득 ‘집어넣다’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서랍에 옷을 ‘집어넣다’, 수납장에 잡동사니를 ‘집어넣다’... 라고만 쓸 줄 알았는데 책 속에 모든 것을 집어넣었다니...
그러면서 작가는 태초의 조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 이야기다. 태초의 조개 한 마리가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녀. 둘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조개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녀도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개는 자신의 존재를 그녀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석회물질을 분비해 껍데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모든 사랑, 그 사랑 안에 존재하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면서 무한히 변하려는 마음... 나선형으로 휘감긴 껍데기 안에서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중략)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뭔가가 탄생하는 경이로운 순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위 문장 중에서는 '모든 것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라는 말이 좋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독자를 향한 감사와 깊은 존중의 마음을, 오로지 이 글 안에서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넣은 한 권의 책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창비, p.332~333
내가 정혜윤 작가의 문장에 이끌린 것은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안에 다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태초의 조개가 그랬듯이 그녀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믿고 싶어 졌다. 나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을 읽게 될(혹은 읽지 않을) 모든 독자들을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 모든 것을 집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을까? 물론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걸 보니 적당히 조금만 집어넣었나 보다. 내 모든 것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계산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태초의 조개에게도 '그 사랑 안에 존재하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이 무언가를 만들게 하고, 그 사랑이 만든 모든 것에 우리의 마음은 움직인다.
'집어넣다'는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단어다. 보이지 않는 주체의 애씀과 정성을 품고 있는 동사다. 나도 내가 쓰는 문장 안에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넣고 싶다. 하루 24시간이라는 내게 주어진 매일의 삶에 뿜어낼 수 있는 모든 열정을 집어넣고 싶다. 생의 길에서 마주치게 될 인연들의 가슴에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집어넣고 싶다. 그렇게 전부 집어넣은 다음 내 안에 남은 텅 빈 충만을 즐기고 싶다.
오늘 당신은 어디에 무엇을 집어넣었는가.
애쓴 당신에게 정혜윤 작가의 아름다운 책 <뜻밖의 좋은 일>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