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국보다 낯선>, <패터슨>의 감독 짐 자무쉬는 촬영 전 스토리보드를 따로 그리지 않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스토리보드를 그리게 되면 자기가 무엇을 찍을지 미리 아는 것이고, 그런 건 짐 자무쉬 감독에게 재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중혁 역시 전체 이야기를 다 그리지 않은 채 소설 쓰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김중혁 작가가 한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내가 어떤 글을 쓸지 이미 알고 있다는 건 내가 나한테 지는 거다. 스스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소설을 통해 하고 싶다. 소설이 어떻게 끝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
짐 자무쉬 감독과 김중혁 작가의 창작 방식이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순간에 몰입한 채 우연적 발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랄까. 물론 '우연적 발상'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무의식 속에 이미 연결돼 있던 어떤 흐름이 의식으로 떠오른 것이라 생각된다. 어쨌든 그것은 무의식의 영역이기에 의식의 영역에서 살아가던 '나'에겐 미지의 세계임이 분명하다. 김중혁 작가의 말대로 그 과정을 통해 나조차도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s)*이라고 하는 자기인식모델이 있다. 창문의 가로축은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 세로축은 '타인이 아는 나와 타인이 모르는 나'로 나뉘어 총 4개의 영역으로 자기 자신을 분석해볼 수 있는 틀이다.
이 4가지 영역 가운데 오른쪽 하단에 '미지의 창(unknown area)'이 있다. 자신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나의 영역이 바로 '미지의 창'이다. 이 영역은 마치 빙산의 아랫부분과도 같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상자라고 할까. 그 안에 어떤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보물상자의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쇠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아무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짐 자무쉬 감독이나 김중혁 작가의 창작 방법을 사용해보면 어떨까. 문장이 떠오르는 대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가 보는 거다. 첫 문장이 두 번째 문장을 낳고, 두 번째 문장이 세 번째 문장을 낳고... 그렇게 한 페이지를 채우고 두 페이지를 채워 가다 보면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문장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뜻밖의 한 문장이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표현해주는 문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다 멋진 이야기가 탄생된다면 그보다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도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처럼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촘촘히 써 내려가듯 행동 하나하나에 작은 마침표를 찍으며 하루하루를 연결해나가는 것이다. 그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른다. 삶이라는 문장도 끝까지 써봐야 알 수 있다. 마지막 커다란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즐기며 그렇게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