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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by 조혜영


글을 쓰다가 멈칫하는 순간을 돌아보면 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이렇게 쓰면 되나?’ ‘내가 잘 쓰고 있는 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글에 대해, 아니 나 자신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럴 때면 누군가에게 자꾸만 확인받고 싶어 진다.


내 글을 읽은 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면 신이 나서 다시 쓰게 되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면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물론 부정적인 피드백이란 것도 나에 대한 혹은 내 글에 대한 인신공격 같은 것은 아니다. 더 좋은 글이 되기 위해 필요한 비판이거나 애정 어린 조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바늘구멍 같이 좁은 내 마음이 자꾸만 움츠려 든다. 확인받고 싶은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유치하지만, 칭찬을 받고 싶은 거다.


이런 마음은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글을 쓸 때 읽는 이의 마음까지 생각해 정성을 다하는 것은 좋은 태도지만, 읽는 이(주로 편집장이나 프로듀서 같은)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조바심을 갖고 눈치를 보게 된다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을뿐더러 글 쓰는 시간 내내 괴롭기만 할 뿐이다.


웹상에 글을 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구독자 수나 조회수에 연연하며 일희일비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조회수를 확인하는데 에너지를 빼앗겨 버리면 막상 글을 쓰려할 때 기운이 쪽 빠져 쓸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느낄 때쯤, 우연히 라이너 마리어 릴케가 어느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되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은지 어떤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잡지에 시를 보냅니다. 당신은 그것을 다른 시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어떤 편집자가 당신의 시를 거절하는 일이 생기면, 당신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러한 일은 일절 그만두기를 부탁드립니다... (중략) ...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보십시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예출판사, P.16~17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답을 발견했다면, 자신이 쓴 글을 바깥의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고 릴케는 말한다. 그런 필연적 확신이 있는 자에게 외부의 평가는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만일 외부의 어떤 권위자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이 진정 써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채 '작가'라는 빛 좋은 허울만을 좇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 명 한 명의 생명이 모두 고귀하고 의미 있듯, 고귀한 생명 안에서 '필연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글'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릴케는 또 말한다.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라'고. 자연으로 다가가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잃은 것을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인류 최초의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표현한 것을 평가해 줄 사람도 없다. 내 글을 인정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외로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마음은 자유로울 것 같다. 그저 내가 첫 번째 목격자가 되어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듯 적어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내 글에 의심이 들고 자꾸만 확인받고 싶어 질 때, 릴케의 편지를 생각하려 한다. 마치 내가 인류 최초의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믿고 마음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답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을 테니까. 내가 쓴 글을 읽는 첫 독자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내가 쓴 글이 스스로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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