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영재로 불리는 일곱 살 소년이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바이올린을 잘 켤 수 있어요?”
“매일 친구를 만나듯이 바이올린을 켜면 돼.”
한 TV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순간, 클라라 주미 강이 마치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리는 단순했다. 매일,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반복하는 행위. 모든 거장은 그렇게 탄생됐다.
굳이 거장의 경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모든 생활의 달인들은 분명 그 과정을 지나 왔으리라. 그 시간이 늘 편하고 즐겁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친구와 말다툼을 하거나 한동안 멀어질 때가 있듯이 고통을 견디는 인내의 시간 또한 필요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하나의 루틴으로써 반복되는 글쓰기.
하지만 그 루틴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다. 그 날 그 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꿈을 꾸는 것과 같이 반복 속에도 작은 차이들이 존재한다. 조금씩 변주되는 일상을 작가의 눈으로 포착해내는 시선... 그리고 그 우연의 순간을 우주에서 펼쳐지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섬세한 마음... 그 때 비로소 일상은 기적이 된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의 일상도 그러하다. 버스운전사이면서 시를 쓰는 남자, 패터슨.
그의 하루는 그가 운전하는 버스와 같다. 매일 같은 노선을 순환하는 버스처럼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지만 시를 쓰는 주체로서 그의 힘은 반복되는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다. 아침마다 침대 위에서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는 것, 식탁 위 흔한 성냥갑에 주목하는 것, 매일 다른 얼굴의 버스 승객들에 남몰래 관심 갖는 것 등...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편안함으로, 하지만 오래됐기에 그 친구를 다 알고 있다는 낡은 관념 없이, 처음 만나는 친구를 보듯 늘 새롭게, 패터슨은 버스를 운전하고 시를 쓴다.
그러한 반복의 힘은 반려견이 시작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절망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그동안 썼던 노트 한 권의 시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때 패터슨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반복으로 켜켜이 쌓아올린 일상의 에너지였다. 허무의 늪에 빠질 새도 없이 그는 자신이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자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먹으러 가던 폭포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처럼' 일본인 시인을 만나 '기적처럼' 새 노트를 선물 받고 다시 시를 쓸 힘을 얻는다. 아마도 패터슨은 늘 그랬듯이 다음날에도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서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같은 노선의 버스를 운전하고, 저녁이면 개를 산책시키며 단골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그리고 시를 쓸 것이다. 매일 친구를 만나듯이...
한동안 글쓰기를 하지 못했다. 매일 만나던 친구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조금 낯설고 서먹하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예전의 사이로 되돌아간다.
길을 잃은 패터슨이 '폭포'를 찾아갔듯이
같은 심정으로 나도 노트북을 켠다.
우연처럼, 기적처럼 새로운 친구를 만나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