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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by 조혜영


어느 월간지의 <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라는 꼭지 취재차 북한산의 작은 사찰을 방문했다. 감동이, 행운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2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스님은 출가 전, 제법 이름 있는 시인이었단다. 진돗개들과 스님의 산책길에 가볍게 동행했다.


“여기 바닥 좀 보세요. 제비꽃이 피었네요.”


스님의 목소리에 땅 밑을 내려다보니 작고 노란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다.


“제비꽃과 양지꽃을 구별하는 법 아세요?”


부끄럽지만 작고 노랗게 피어난 그 꽃들이 제비꽃인지도 몰랐는데, 양지꽃은 더더욱 알지도 못하니 그 둘을 구별한다는 것은 내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제비꽃은 양지꽃과 다르게 잎이 하트 모양이에요. 예쁘죠?”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자세히 보니 정말 초록색 잎이 하트 모양이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목이 말라 가져 간 물을 꺼내 마시는데, 감동이도 목이 말랐는지 바위틈에 고여 있던 물을 헐레벌떡 마신다. 물이 조금 더러워 보여 걱정을 하니 스님께서 괜찮다며 말씀하신다.


“얘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해요.”


스님은 출가 후, 시를 안 쓴 지 10년이 넘었다지만 살아가는 방식에서만큼은 어쩐지 시인의 면모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듯했다. 외부에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매일 산속에서 감동이, 행운이와 함께 하다 보면 시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시가 느껴진다고 한다. 새소리, 물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개들과 산책하는 시간은 스님에게 하나의 명상이자 시 그 자체다.


“안도현 시인이 말하길, 시(詩)라는 것은 ‘애기똥풀’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했어요. 다시 말하면 그 이름을 알아보는 것이죠. 이름을 알면 그 사물과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어요. 아까 산책하다가 제비꽃을 알아봤잖아요. 그 순간 우리는 제비꽃과 교감을 나눈 것이죠.”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비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던 내가 제비꽃을 알게 되고 잎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까지 알게 된 그 순간은 시(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교감’이라는 시에서 ‘자연은 하나의 신전’이라고 표현했다. 길지 않은 산책길, 감동이와 행운이는 물론이고 스쳐 지나간 식물들과 교감을 나눈 시간들이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낯선 경험으로 다가왔다. 마음 안에 짧은 시(詩) 한 구절을 품은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고 할까.


“옛 선승들이 쓴 선시를 읽다 보면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분들은 전혀 바쁘지 않아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욕구가 없어요. 내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시적인 삶이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단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는 것, 그러면서 묵묵히 시절 인연을 기다릴 줄 아는 태도가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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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시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중


“최근에 달 본 적 있어요? 아마 눈으로 보고도 봤는지 모를 수 있어요. 달을 보며 달을 느끼는 것, 그것도 시이자 수행입니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길, 어두워져 오는 하늘에 흐릿하게 저녁달이 떠 있었다. 손이 아닌, 마음으로 시를 쓴 것만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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