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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May 08. 2019

낯선 세계, 우주의 맛

싱어송라이터 '우효'와 박상영의 소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ARMY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굳이 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전 세계 팬들이 BTS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 생각했고, 가끔 그들의 음악도 들었다. UN 정기총회에서 BTS RM이 연설을 할 때만 해도, 그 메시지에 감동을 받긴 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그랬던 내가 이번 2019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할시(Halsey)와 함께 한 BTS의 무대를 보다 그만 입덕 하고 말았다. 그간 전 세계 ARMY들의 '노고'를 생각할 때, 입덕 일주일 차인 내가 감히 ARMY라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저기 부대 맨 끄트머리 어디쯤에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BTS의 리더이자 어쩌면 그는 시인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영감 어린 말을 잘하는 RM이 몇 년 전 자신의 SNS에 음악 하나를 추천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디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민들레'라는 노래. 우연인지, 운명인지 구독 중인 신문에서 마침 새 앨범이 나온 우효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고 곧바로 우효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민들레, 꿀차, 청춘, Teddy Bear Rises, 아마도 우린... 등등 한마디로 우효의 음악이 너무 좋았다. 특유의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묵직한 청량감'으로 전해져 왔다. 묵직함과 청량감이 같이 쓰일 수 있는 단어의 조합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귀에 그녀가 노래하는 세계는 말 그대로 '묵직한 청량감'이었다. 그동안 쉽게 만나보지 못한 세계였다. 낯설기도 했지만 친근했고, 낯설어서 설레었다. 그렇게 나는 우효로 인해(어쩌면 RM으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세상에 존재했지만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최근 <2019 젊은작가상>을 받은 박상영 소설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읽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그랬다. 이 감정, 이거 뭐지?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이 작게 요동 치더니, 한 시간 가량 지나서였을까, TV 예능 프로그램을 넋 놓고 보다 그만 덜컥 터져버린 울음에 나조차도 놀랐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박상영 소설가가 만들어낸 낯선 세계 속에 함께 있었던 거다. 마치 그가 만든 세상의 단면을 슬쩍 엿보고 온 듯한, 아니 슬쩍 엿본 게 아니라 그 속에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느낌...


횟집에서 우럭을 먹다 몰래 좋아하던 남자로부터 '당신이라는 우주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주인공(남자). 그 순간, 주인공은 말한다.


용암을 뒤집어쓴 폼페이의 연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주 뜨거운 것이 나를 덮쳤고 순식간에 세상이 멈춰버렸다... (중략) ... 수족관의 푸른 조명 탓인지 그의 얼굴이 더 창백하게 보였다. 그늘진 그의 얼굴이 누구보다도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 뒤였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크게 다가왔고, 나는 그만 입술에 키스를 해버렸다. 그의 입술에서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 났다. 비릿하고 쫄깃한 우럭의 맛, 어쩌면, 우주의 맛. 그날 밤 우리는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중에서   

        

그의 입술에서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 났다. 비릿하고 쫄깃한 우럭의 맛, 어쩌면, 우주의 맛.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이 소설이 내게 준 정서와 울림을 짧은 문장으로, 아니 긴 문장으로도 표현할 자신이 없지만) 아무튼 이 소설 나에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우주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BTS로 시작해 우효를 거쳐 박상영까지... 요즘 내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다. 작지만 확실한 사치라고 할까.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그들이 만든 낯선 세계를 만나는 사치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우주의 맛'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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