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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May 02. 2021

2021, 부산 (4)

부산 여행기

  셋째 날 밤에 어른 한 분이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왔다. 우리 회사 팀원이자 팀 리드, 삶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지혜로운 분. 나는 그 분이 너무 어른 같아서 역시 어른이시다, 나는 한참 애다 같은 소리를 주저 없이 하곤 했다. 그러니 이 글에서 나는 그 분을 어른이라 칭하겠다.


  첫째 날에 생각을 정리하며 번아웃이 왔음을 인정한 글을 어른에게 보여 줬었다. 어른은 글을 읽어 보더니 자신도 최근에 번아웃이 왔다 그랬다. 어떤 연유냐 물었는데, 그는 대뜸 그 이야기는 부산에서 들려주겠다고 그랬다. 그리고 진짜 내려왔다. 충동의 신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내려올 줄이야. 그렇게 단숨에 올 줄이야. 어른은 부산에 가고 싶은 카페가 있다는 말로 내려왔다. 여행을 하고 싶다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밤에 만났다. 마감 시간 한 시간 전인 피자집을 찾았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으니 당장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왜 번아웃이 오셨죠."


  그는 내 이야기를 먼저 듣겠다 했지만 나는 어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어른은 맥주 한 잔을 비우며 저번 달에 제주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자문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같은 고민이었지만 다른 방향이었다. 같은 것을 다르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꽤 큰 위안이 되었다. 어른의 이야기는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어쩌다 이 이야기까지 온 거지?'라며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느 이야기든 삶을 고민한 흔적이 묻어 있었다.


  내 맥주가 반 컵, 어른의 맥주가 두 잔째일 때쯤에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리한 마음을 쏟아내었다. 어른은 가만히 들어 주었다. 고민할 때는 그렇게 슬프고 괴롭더니 무엇이든 들어 줄 것 같은 사람 앞에서 고민한 것을 이야기할 때에는 괴로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점점 정리되어 가는 마음과 함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마감 시간 오 분 전이었다.


"지금 한 잔만 더 시켜도 되나?"

"오바. 진짜 시킨다고요? 저희 마감 오 분 전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나올 텐데."

"난 나의 역량을 믿어. 주문이요."

"저희 마감 오 분 전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이 사람이 오 분 컷 한대요."

"마감 전에 다 마시고 나갈게요."


  실로 삼 분 만에 한 잔을 꿀떡꿀떡 삼킨 어른이었다. 아마 나는 또 "진짜 어른다우십니다", "과연 어른이십니다" 같은 소리를 했을 것이다. 친절하신 사장님과 짧은 담소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찼다. 숙소 앞 온천천을 걸으며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고작 맨투맨 한 장만 걸치고 온 어른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집 앞 카페 가듯 맨투맨에 백팩만 달랑거리고 비행기 탄 사람이 혹시 추울까 봐. 하지만 어른은 역시나 어른답게, 춥지 않으니 같이 걷자고 했다.


  피곤함도 잊고 한참을 걸었다. 혼자서는 열심히 뛰어서야 역 두 개를 지나고 유채꽃밭에 도착했는데 어른과 함께 걸을 때에는 금세 만발한 유채를 보았다. 걸음이 빨랐던 것 같지도 않은데. 나는 맥주 한 잔에 신이 나 버렸고, 산책할 때 궁금했던 것들을 모조리 쫑알댔다.


"지나다 보면 가만히 앞에만 보던 새가 하나 있던데요. 다리가 길고, 부리도 길고.... 이름은 모르겠는데 잠도 안 자고 앞에만 보더라고요. 안 졸린가."

"학이나 두루미인가. 앞에만 보고 있는 게 자는 거일걸요."

"허얼. 그게 자는 거라고요? 너무 다행이다. 와, 나 진짜 너무 궁금했는데. 어, 쟤예요. 오늘도 있네. 가만히 앞에만 보죠. 저게 자는 거구나."

"이름 뭘까. 궁금한데. 궁금한 건 못 참지."


  어른은 기어코 검색을 돌려 그 새가 황새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나는 혼자 궁금해하기만 했던 의문이 풀려 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어른도 꽤 짜릿한 표정이었다. 혼자서는 검색할 생각도 해 보지 않았는데. 새의 이름이 황새임을 검색해 주듯이 어른은 나에게 늘 해답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쯤 그는 그랬다. 자신은 매니징을 할 때 해답을 주고 싶지 않다고. 정답으로 가는 길을 직접 알게끔 해 주고 싶다고. 정답을 알려 줘 버리는 건 그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뺏어 버리는 것이라고. 놀라운 사고였다. 귀 아프도록 진짜 어른이라는 소리를 해댔다. 이런 면을 볼 때마다 다른 차원의 사람 같아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멋쩍게 웃기만 하는 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게 얼마나 멋진지 알까. 그런 사고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어른은 나에게 책 한 권을 빌려주었다. 제주도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라 그랬다. 그렇게 사고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나에게 빌려주었던 책. 며칠 후 나는 흰여울마을의 예쁜 카페에서 그 책을 읽었다. 반쯤 읽다 말고 만년필을 들었다. 노트 낱장을 북 찢었다. 수신인 없이 한 줄 옮겨 적었다. 적다 보니 어느새 어른을 향한 글이 되었다. 나는 그 낱장을 책 사이에 끼워 어른에게 돌려주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역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을 다시 읽지는 않은 모양. 직접 찾기 전까지는 절대 노트 낱장에 대한 이야기도, 이 글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려 주지 않을 셈이다. 나는 선물처럼 내게 날아온 행복을 함께 돌려준 것이니까. 나와 같이 예상치 못한 때에 행복할 수 있기를.


'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

3월의 제 글을 좋게 봐 주셨지요. 저는 위로와 존중을 줄 수 있는 멘토 같은 사람이 부재함이 슬프다고 적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한 갈래로 정해져 있다면 참 살기 편할 텐데, 나는 어찌 살아가야 하나, 제대로 살고 싶은데 제대로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정답에 집착하고 헤매는 과정, 결핍된 자신감을 인정하는 과정 속에 어른의 존재가 길잡이처럼 쓰였습니다. 좋은 어른을 알게 되어 저는 이제 더 슬프지 않아요. 일시적일 수도 있겠지만, 약발 톡톡히 보는 사월입니다. 계절이 가고 새로운 사람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으며 삶이 또 한 차례 변화할 때마다 저는 요조가 그랬듯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당장 흉내 내고 싶은 것은 어른의 혜안이에요. 지혜로운 삶의 모양을 모방 좀 하겠습니다. 이 종이는 사실 감상문도, 편지도 아닌 협박장에 가까운 종이입니다. 허허 웃고 넘겨 주실 것을 알아요. 다른 데에는 다 자신 없어도 이런 건 또 자신 있어서.

아무쪼록 늘상 건강하세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고, 그래야 제가 또 보고 배우며 정신세계를 무럭무럭 키우고 가꿀 수 있거든요. 잊지 마세요. 이것은 협박장입니다.

좋은 팀 리드와 멘토가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책을 빌려주신 것도요. 앞으로도 좋은 친구와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그때 또 협박할게요.

부산 손목서가에서,
올해도 애새끼인 채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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