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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Aug 22. 2021

제주 한 달 살이 (8)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배웅 엽서

  자세히 느낄 것들이 많았던 며칠을 보내고 나니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 줘야 할 것 같았다. 방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쌓인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하나씩 치워 갈 때마다 집에도 마음에도 공간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되찾은 마음의 여유 틈새로 내일이면 육지로 돌아갈 아란이 생각났다. 검정치마의 음악을 재생하고 엽서에 글자를 눌러 썼다. 행복한 시간들을 잔뜩 보내고 나면 왜인지 그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불안이 들곤 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간이 될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 과분한 행복을 위한 통과 의례인 걸까.


  당연히 같이 있을 수 있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상실감은 나에게 꽤 큰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금방 슬퍼졌다. 그럼에도 나는 아란과 같이, 또 혼자 있었던 시간 덕에 분명한 위로를 받았고 외로움을 떨칠 수 있었다. 슬픈 마음은 접어 두고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마저 썼다. 고마운 사람에게는 왜 항상 미안한 일이 같이 떠오를까. 너무 고마운 일은 미안해지기도 하는 걸까.


  우리는 항상 좋아하는 것들의 이유가 뚜렷하고, 뚜렷한 이유들이 사소하고, 그걸 바로 말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도 그랬던 우리가 좋았다. 꽉 채운 엽서만큼 아란의 일주일이 행복으로 꽉 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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