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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Aug 25. 2021

제주 한 달 살이 (11)

2021년 8월 24일 화요일, 내용 없음

  특별한 생각을 하지도, 특별한 곳에 가지도,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은 날이었다.


  내 삶을 고민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무것도 고민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고, 하루쯤은 푹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에 이어 계속하려 했던 삶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고 드라마나 줄창 봤다. 야금야금 아껴 보던 카레의 노래를 결국 다 봤다. 드라마 속 카레는 얼마나 맛있기에 주인공은 카레가 나올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릇을 들고 코를 박는 건지.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버 액션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나는 왜 이 드라마를 아껴 보기까지 하는 건지. 내가 해 먹은 카레는 걸쭉한데 밍밍했고, 분말 카레로 동생에게 카레우동을 해 주겠다 말해 놓고는 밍밍하고 불어 터진 카레우동을 만들어 줬던 기억이 났다.


  저녁에는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면서 과자나 먹고 싶었다. 집 앞 마트에서 뿌리채소 믹스 넛을 구입했고, 한 통을 다 비울 생각은 없었는데 다 먹어 버렸다. 숨도 안 쉬고 먹었던 것 같다. 마음이 허할 때는 꼭 위를 채우고 싶어지는 이 안 좋은 습관은 왜 아직도 못 고치고 있는 걸까. 가끔 이 음식의 냄새와 비주얼이 어떤지 의식하지 않은 채 꿀떡꿀떡 넘기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괴감이 든다. 왜 이렇게 바쁘게 먹고 있는 건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누가 내 밥그릇 뺏으러 오고 있는 거냐고.


  그래도 운동은 해서 다행이다. 하체 하기 싫은 날임에도 하체를 꾸역꾸역 하고 나면 나를 마구마구 칭찬해 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돌아다닌 곳도 없었고 유산소도 꼴랑 20분 탔을 뿐인데 잠은 또 왜 이렇게 쏟아지는지.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잠들었다. 몸도 그만 스위치 끄고 싶었던 것을 보면 오늘은 그냥 이렇게 보냈어야 할 시간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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