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7일차

by 채윤희

5월은 우리 가족에게 행사가 많은 달이다. 내 생일, 동생 생일,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모두 5월 말에 몰려 있어서 5월 말이면 꼭 같이 식사를 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본가로 향했다. 나는 강아지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었고, 엄마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릴 때부터 "땅콩아! 누나가 왔다!" 하며 뛰어나왔다. 땅콩이는 내 가슴팍에 올라와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거실 바닥에 쓰러진 채 무방비 상태로 땅콩의 배를 마구 긁어 줬다. 엄마는 누운 내 옆으로 다가와 이모께서 <들장미 소녀 캔디> 전권을 선물해 줬다며, 요즈음 책을 읽는 데 여념 없다는 말을 시작으로 일상을 쉼 없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강화도에서 늙은 호박을 캐 왔다는 이야기, 집사님 댁에 김치를 가져다 드린 이야기, 땅콩이와 드라이브를 다녀온 이야기를 거쳐 외국계 기업에 지원해 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즈음 나는 외쳤다.


"망고를 먹고 싶구먼."


가녀장적인 대사로 자연스럽게 회사와 이직으로 이어질 만한 이야기를 디펜스 했다. 엄마는 망고가 지금 계절에 있겠느냐, 참외가 있으니 참외를 먹으라 하셨다. 난 참외 싫어하는데 하필 내 생일은 참외철이야. 엄마는 맨날 생일에 참외 깎아 준다 그래.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어. 툴툴거리면 엄마는 킥킥 웃으며 마트 한번 가 봐? 그런다. 그럼 나는 데굴데굴 구르기만 하면서 맹고, 맹고, 애플맹고면 더 좋고,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애플망고는 더욱이 없을 것이고 망고 없으면 뭐 사다 줘, 묻는다. 나는 준비된 답변인 양 바로 읊는다. 체리, 꿀떡, 인절미.


망고가 없으면 체리를 원한다는 말이었음에도 엄마는 망고, 체리, 인절미를 전부 안고 돌아온다. 깎아 줘? 씻어 줘? 물으면 늬에엥, 하면서 얼굴 앞에 과일 접시가 도착할 때까지 또 뒹굴거린다. 포크로 망고를 찍어 입에 쏙쏙 넣는다. 엄마 무릎에 누워 씨 발린 포도를 받아먹는 어린애처럼. 집에 오면 나는 늘 내 한 몸 건사할 필요조차 없는 아기가 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엄마는 몇 년째 운전 연수를 받는 중이고 배웠던 길이 아니면 겁이 난다며 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운전 실력을 신뢰하지 않아 그녀의 동승 제안을 매번 거절해 왔다. 주차 공간 협소하니 버스 타고 가자 해도 엄마는 꼭 차로 가고 싶은 것 같았다. 주차 못하겠으면 주변 사람들한테 해 달라고 하면 된다며 으쓱하길래 더 이상의 거절은 힘들겠구나 싶어 조수석에 앉았다. 엄마는 내비를 슬쩍 보더니 "이 길이구만. 쉽네." 하곤 벨트를 척척 매고 바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승차감이 편안했다.


피자를 다 먹어 가던 중 차를 빼 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예상대로 주차 공간이 협소하여 차를 빼기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빼 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 엄마는 자신 있게 차 키를 들고 운전석으로 갔고, 나와 동생은 창밖으로 엄마가 차 빼는 모습을 구경했다. 자신 있던 발걸음과는 다르게 엄마는 핸들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1초에 한 번씩 브레이크와 액셀을 밟으며 옆 차를 긁기 일보 직전까지 찔끔찔끔 후진했다. 나는 놀라 튀어나와 엄마, 옆 차 박겠어, 했고 차를 빼야 하는 차주분께 "정말 죄송한데 혹시 저희 차 빼 주실 수 있을까요"라 여쭈었다. 엄마는 머쓱한 듯 제가 초보여서요, 하며 뒷목을 긁었다.


엄마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 혼잣말을 했다. 옆에 차는 왜 이렇게 큰 게 대져 있던 거야. 하마터면 긁을 뻔했네. 무단횡단 할 생각 마세요, 아저씨. 이 차는 왜 여기 대 놨냐. 잔뜩 긴장하고 기가 죽어 중얼거리는 모습에 창밖만 바라보며 함구하게 됐다. 왜 엄마가 작아진 모습을 볼 때면 내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까. 긴장 안 한 척하려 무마하는 모습이 나와 똑같아서, 해 보지 않은 걸 못하는 건 당연한 건데 잘 해내지 못했을 때 잔뜩 풀이 꺾이는 모습이, 꼭 회사 생활 할 때의 내 모습 같아서 어쩐지 울적해졌다.


엄마라면 분명 오늘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며 속상해하고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적막감을 느끼다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냥 딴 얘기로 메시지 보냈다. 엄마, 그때 할머니가 해 주셨던 그 이야기 뭐였더라? 엄마는 아직 답장이 없다. 아마 그녀만의 밤을 견디고 있으리라.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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