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코드는 자발적 퇴사이지만, 회사의 일방적 근무 조건 변경이 퇴사 사유였으므로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긴 기다림 끝에 이직 확인서와 건강보험 자격 상실이 완료되어, 각종 서류를 바리바리 싸들고 인근 고용플러스복지센터에 방문했다.
센터에서 돌아온 답변은 꽤 실망스러웠다. 실제 근로 시간이 변경된 것이지, 소정 근로 시간이 변경되어 근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 것이 아니므로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 실제 근로 시간과 소정 근로 시간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다. 실제로 근로자가 근무하게 되는 시간은 실제 근로 시간이 아닌가? 근로 시간을 25% 늘리겠다는 공지가 근로자의 동의 없이 게재되었는데, 이를 증거로 제출한들 근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 것이 아니므로 실업 급여 수급에서 제외된다는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센터에서는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계약직을 한 달만 채우고 퇴사한 뒤 재방문하라'는 답변을 줬다. 이게 무슨 해결 방안이란 말인가. 반박할 틈도, 여지도, 힘도 없이 고용센터를 빠져나왔다.
불의에 정의로 맞서려 했는데 그건 맞는 정의가 아니라 할 때 나는 바람 빠진 풍선이 되곤 한다. 순식간에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쭈글쭈글한 하루를 보낸다. 걸리는 게 있으면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게 안 되는 나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그렇게 보냈다.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 속에서 참담함과 건배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 기분이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파트타임으로 전부 해 보자는 긍정 회로가 돌았다.
개발자로 7년을 일해 오면서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해 왔다. 자신 없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도 자신이 없어지고, 종국에는 자아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만둘 용기가 부족했을 때에 나는 늘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개발자를 그만둔다면, 나는 꼭 내가 자신 있는 일을 해야지. 나의 취향을 설파하거나 글로 벌어먹는 삶을 살아야지. 이제는 그 일들을 하나씩 실현해 볼 수 있다.
인생의 최종 목표가 있느냐 묻는다면 음악 감상실을 겸한 다이닝 펍이나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것이라 말하고는 했다. 때론 시골에서 하루 종일 글만 쓰는 삶을 살고 싶다 말하기도 했다. 우연히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펍으로 운영되는 리스닝 펍에서 구인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군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거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