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4일차

by 채윤희

퇴사를 했다고 알리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가 부럽다'라고 한다. 30대에 갓 접어든 이 나이대는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이 보편적으로 중요한 시기라 더 그럴 것이다. 이럴 때 듣는 용기에 대한 칭찬은 나를 은근히 고취시켜서 '퇴사 뽕' 같은 걸 맞은 기분이 든다. 남들이 다 가는 길로부터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분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만.


조조 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이 시간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하면서, 그 무리에 나도 끼어 있다는 사실이 제법 좋기도 했다. 우정에 관련된 영화일 줄 알았던 <해피엔드>는 우정보다 불의에 최선을 다해 반대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 퇴사는 사실 불의에 반대하기보다는 불의를 차단하고 도피한 것이었을까, 나는 불의에 맞서면서 살고 싶은 건가, 생각했다. 어쩐지 자꾸만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헛헛한가 싶어 점심으로 카레를 먹으러 갔다. 한 숟가락 들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 밥알을 한 개씩 세면서 깨작거리다 결국 새것처럼 남은 카레를 포장했다. 냉장고에 처박아 두고 침대에 누웠다. 책을 조금 읽다가 채용 공고를 찾아봤다. 타인의 시선을 잠시 의식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괜찮아지는 많은 것들을, 안도하는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 위로 죽상이 된 내 얼굴이 겹쳐졌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벽지 무늬를 한참 동안 뜯어봤다.


갑자기 열이 올랐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팔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몸은 찬데 속이 뜨거운 것 같았다. 급하게 햇반에 계란 두 알을 풀어 죽을 끓이고 타이레놀을 털어 넣었다. 어지러웠다. 겨우내 열감이 사그라들 때쯤 친구가 왔다.


친구는 다가올 생일을 축하한다며 마가렛 한 다발을, 나를 닮은 꽃이라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는 말과 함께 안겨 주었다. 내가 이렇게 귀여워? 하하 호호 웃다가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매일 마음이 바뀐다 그랬다. 어제는 회사 생각 같은 거 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그렇게 났다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고 하는 말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아주 잘 지나고 있네.


우리는 취미를 잘 지키면 상여금을 주는 취미수당 같은 걸 나라가 줬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나 그랬듯이 요즘 읽는 책을 묻고, 어디가 좋았는지 이야기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서로의 메모장에 서로가 좋았다던 소설과 시집을 한 권씩 적었다. 빠른 시일 내 다시 만나 함께 공상하자 약속했다. 짧게 포옹하고 헤어진 뒤 미리 받은 생일 편지를 읽었다. 나의 눈물과 힘듦을 짊어져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에 또 조금 울 뻔했다. 감상에 젖는 것만으로도 바쁜 하루다. 이런데 일할 시간이 어떻게 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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