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날 하루를 결정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오늘 아침, 알고리즘에 불현듯 <인도에서 요가만 하며 한달살기 | 삶에서 의도적 고립이 필요한 진짜 이유> 라는 영상이 떴다. 그 영상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연 덕분일까. 나는 오늘 하루만큼은, 재취업에 대한 불안 없이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영상 설명란에 그녀의 일기장 한 페이지가 적혀 있었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한다는 것은 완벽함의 환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외부의 성취로 내면의 공허를 채우려 하고, 그 과정에서 더 큰 갈증을 느낀다.
자기 밖으로 빠져나와 인지하고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그렇기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전자는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쓰는 작가가 되고, 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에 의해 ‘쓰여지는’ 등장인물로 남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거창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이 기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은 선택들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자유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워진다.
4월 17일의 일기 중에서.
그동안 나는 나의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짜여진 틀에 맞춰 나를 갈아 넣으려는 노력을 주로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니까, 주로 타인에 의해 '쓰여진' 등장인물로만 활약하다가, 가끔씩 나의 호오를 탐구할 때에만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쓰는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잠시간 작가가 되었던 순간에 기대 기억을 파먹고 살았다.
누군가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묻노라면 항상 답하던 것 중 내게는 분명히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구조적 안정감이 주는 달콤함에, 내 안의 자유의 가치를 잊고 살게 됐다. 이제야 나는 다시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갈망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로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