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2일차

by 채윤희

어젯밤, 나는 실업급여 수급에 필요한 이직 확인서를 회사에 요청했다. 나도 처음엔 확신이 없었다. 자발적 퇴사자는 보통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문의한 결과, 나의 경우는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른 「근로조건이 일방적으로 불이익하게 변경된 경우」에 해당할 것으로 사료되어, 우선적으로 회사에 관련 서류를 요청하게 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메일함을 확인했다. 회사에서는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가 아니신데 발급이 필요하신가요?"라는 답변이 와 있었다.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들 수 있는 의문이었겠지만, 이전의 다른 경험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내게 유리한 요청은 늘 예민한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실업급여 관련 요청 또한 '회사에 해가 될 수도 있는 일'로 치부하여 나의 문의를 터부시 하는 건 아닌가, 일부러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회사 근무 중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발을 딛기도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회사 내규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하여 출근이 어려운 경우, 예외적으로 재택근무를 허용한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나는 최소 4주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회사에 예외 재택근무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목발 짚고 출근하고 계신 다른 분이 있어서 재택근무 허용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냐, 공지된 규정과 전혀 다르지 않느냐 수차례 메신저로, 유선으로 언쟁이 오갔으나, 내 입장에서 회사의 스탠스는 "나는 네 편의 봐주기 싫다, 다른 사람도 견디고 있는데, 너도 견딜 수 있지 않냐?"로밖에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발목 인대 파열 건은 조직장의 요청으로 결국 승인되어 한시적 재택근무를 하였으나, 해당 경험으로 인해 나는 회사와의 신뢰가 바닥나 버렸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요청하면 바로 승인되는데 비권위자의 요청은 그저 등한시되는 상황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그저 떼쓰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이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메일 답장을 보는 순간 그때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숨이 콱 막혔다. 동시에 내가 참 애써서 불편하게 사는 사람인가 싶어 자괴감도 들었고.


하루 종일 받은 편지함의 새로고침 버튼을 딸깍거렸다. 애써 둥글게 포장하여 재송신한 답장에 회사의 응답은 없었다. 버튼을 한번 딸깍일 때마다 모멸감이 차올랐다. 회사가 나를 어떻게든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너무 세상을 복잡하게 생각하나, 남들 다 하는 '좋게 좋게'가 나는 왜 죽어도 안 되나, 내가 오히려 이 사람들 괴롭히나,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인가....


비합리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내 판단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인지, 사실은 이미 충분히 합리적인 세상을 삐딱한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회사 생활을 계속했다면,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갔어야 마음이 더 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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