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날이다. 나는 무엇이 될까.
며칠 전, 언젠가 만들고 싶던 공간과 닮아 있는 공간이 구인 중인 것을 발견했었다. 오늘 그곳을 다녀왔다. 한 손에는 전직할까 고민하고 있는 직무인 테크니컬 라이터에 관련된 서적 한 권을 사 들고. 즉, 두 개의 마음으로 다녀온 것이다. 꾸리고 싶던 공간에서 일하는 나를 상상하는 마음과, 궁금했던 직무로 전직한 나를 상상하는 마음으로.
공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늑했고, 평소 좋아하던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내 플레이리스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줄 알았다. 창밖으론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음악과 공간이 좋으면 음식은 별로인 곳도 많은데, 그곳은 음식과 음료까지 끝내줬다. 사장님과 직원은 크게 교류가 없어 보였고, 매장도 한산해 음악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던 공간의 정제된 버전 같았다. 당장 "저를 일꾼으로 써 주십시오" 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회사에 소속돼 안정적이고 높은 월급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테크니컬 라이터라면, 내 장점을 잘 살리면서 일할 수 있는 곳 아닐까?
두 가지 선택지 모두를 열어 둔 채로 일단 혹시 모르니 테크니컬 라이터 직무로의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문단, 두 번째 문단까지는 내 진심을 온전히 담았는데, 세 번째 문단부터는 첫 번째 회사에서 일하던 나를 담아야 해서 그런지 이력을 그럴싸하게 꾸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실제로 나는 첫 번째 회사에서 기업 문화와 맞지 않아 나를 갈아 넣는 노력을 했었고,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에 괴로웠었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이렇게나 주고받았습니다는 식으로 이력서를 작성하는 내 모습이 영 탐탁지 않았다. 어영부영 마무리한 이력서를 GPT에게 검수해 달라 요청했더니, 얘는 추가로 아첨을 더 넣기까지 했다. '저는 이 역할에 꼭 맞는 사람이라고 자신합니다'라는 문장을 추가해 보라니. 유관 경력 하나 없이 자신할 만한 위인은 못 되는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속이는 기색이 보이면 나는 나를 수색하듯 검열한다. 한 점의 거짓말도 나에게는 용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고정된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로 살아가려면 그런 나만의 원칙 따위는 잠시 접어 두어야 하는 걸까. 그보다 나는 그런 월급쟁이를 원하기는 하는 걸까. 분명 고정 수입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쭉 생각해 왔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밥줄 끊기니 생각이 좀 달라졌나.
이제는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 곳에도 지원하지 않았고 아무 곳에서도 나를 뽑고 싶다 하지 않았는데 뭘 이렇게 고민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날에는 그냥 컴퓨터 끄고 잠이나 자야겠지. 복잡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