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9일차

by 채윤희

결국 이력서를 써냈다. 어느 회사든 부조리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회사원이라는 것 자체를 안 하고 싶다고 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이력서를 냈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했을 뿐인데 자꾸만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만 같은 건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해서일까. 어느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은 없는데, 나는 무서운 것 같다. 또다시 영혼이 갉아먹히는 기분이 들까 봐. 아무 일이 없을 때조차 삶이 미워질까 봐.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이 드는 동시에 나를 무직 상태로 가만 두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머리와 손이 따로 논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다 생각하며 지원하기 버튼을 누른다. 여러 가지 마음이 들 때에는 가장 앞에 있는 마음부터 하나씩 처리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했는데, 이 헛헛한 마음은 뭘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꼭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 것 같다. 꼭 들어가고 싶은 회사, 꼭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꿈 같은 것. 사실 꼭이라는 건 필수 요소도 아니고 매일을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상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간절한 한 가지'에 집착하게 될까. 궁금했던 일을 전부 해 보면서 살자는 가벼운 마음이면 충분할 텐데.


낭만을 좇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동경하는 탓일까. 이왕 살 거 무난한 것보다는 낭만 있게 살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내 낭만이 동난 것인지, 원래부터 없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살아지니까 숨을 쉬고, 살아야 하니까 돈을 벌려 한다. 모든 것을 직업으로 연결 지어 살 궁리를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삶에 집착했다고.


머리를 완벽하게 비우고 싶어졌다. 백지장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나는 지금 중심을 잃고 쓰러진 자전거 같다.

keyword
이전 09화퇴사 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