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우리 아빠 01화

왜.

by 풀 그리고 숲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죽음은 너무나 많은 것을 바꾼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너무 슬펐다. 모든 게 슬펐다. 엄마에게 잘하지 못한 것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엄마의 온기가 남은 집에 덩그러니 있는 것도, 그 온기가 사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도, 가족들의 슬픔과 흐트러짐을 마주하는 것도.


그러나 내가 그것을 온 힘으로 마주하고 슬퍼하고, 그러면서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빠가 계셨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내 영혼이었다면,

아빠는 내 기둥이었다.

나는 그 기둥에 기대어 맘껏 슬퍼하고, 가끔은 쓰러졌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그 기둥을 붙잡고 일어나면 되는 거였다.


인생에 변곡이 생기면, 그 변곡으로 인해 괴롭고 힘들었을지라도 언젠가는 변곡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그게 순리인 것처럼. 누군가와 이별한 후에, 굉장히 괴로운 시간을 보낸 어느 끝에서. 이별마저 감사한다거나 이별까지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엄마가 안 계셔 괴롭고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것을 한 순간 한 순간 진심으로 감당해 내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 삶의 한 겹 한 겹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아빠 덕분이었다. 물론 내가 중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일 때였기도 했지만, 엄마와 이별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것도 아빠셨으니까.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기만 했으니까.


엄마의 부재로 내가 느끼게 된 것들, 배운 것들, 그리하여 완성된 내 모습들을 마주하는 과정을 거쳐... 엄마의 부재가 숙명은 아니었을까, 나를 완성하기 위해 떠나신 걸까, 그리고 현재의 내 인생관과 가치관을 만들어주신 엄마의 부재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지경까지 이른, 감히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될 정도의 여유를 주신 감사한 분은 분명 아빠였다.


삶은 찬란하고, 감사한 일이며, 행복하다고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튼튼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셨기 때문이었는데... 아빠와의 이별은 너무도 다르다. 내 신념에 균열이 생긴다.


삶이란 뭘까, 죽음이란 뭘까.

존재란 뭘까.


내가 믿던 찬란함, 감사함, 행복함이 흐릿해진다.


어딘가로 또 나아가게 될 거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은 허무 속에서 지내게 될 것 같다.


나는 정말 바라는 게 없었는데. 딱 하나, 아빠의 건강만이 내 소원이었는데.

'소원'이라는 단어를 굳이 붙이지 말 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단 하나 욕심내고 싶던 아빠와의 세월마저 빼앗는 세상이 야속하다.

그간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떤 순간에든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며 씩씩하게 살아왔으니까. 당분간은 감사함 같은 건 내려놓고, 원망 섞인 마음으로 좀 지내도 괜찮겠지.


글이라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keyword